노가다가 재밌을 줄이야. PC 도라에몽 진구의 목장이야기 리뷰

  • 입력 2019.10.23 15:45
  • 기자명 김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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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에몽이다. 도라에몽. 도라에몽이라. 망했다. 게임의 이름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캐릭터게임이라니. 아쉽게도 나는 만화나 소설 캐릭터를 기반으로 만든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 봐야 원작의 감동과 재미를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편견 탓이다. 거기다 게임의 스토리 역시 원작을 따라갈 게 뻔한데 어떤 긴장감과 재미가 있겠는가! 아무 생각 없이 때리고 부수는 무쌍류 액션장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 역시 스토리 컷신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원작의 내용이 그래픽만 입혀서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단점 때문에 나는 만화 원작 게임을 깊이 있게 즐기지 못한다. 나루토 시리즈, 원피스 시리즈 모두 그런 이유로 한 두시간만 플레이하고 접은 적이 많다. 그런 내게 도라에몽이라니...... 아장아장 고양이 로봇과 친구들이 나와서 유치뽕짝 청춘 드라마를 찍는 게임일 것이라는 게 내 예상이었다. 장르를 보니 시뮬레이션 장르. ! 좋아하는 장르가 쓰여 있어 조금 마음이 놓였다. 당연히 20분은 걸릴거라 생각하고 설치를 누르고 잠깐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웬걸. 5분만에 설치가 완료되어 도라에몽의 귀여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55000원이라는 가격 탓에 당연히 나는 기본 10기가는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용량을 확인해보니 1기가 남짓...... 도라에몽과 진구라는 캐릭터만 내세운 돈벌이용 게임인가. 우려를 품은 채 게임을 켰다. 뭐야. 그럭저럭. 할 만하네. . 근엄한 표정으로 게임을 즐기고는 저장버튼을 눌렀다. ? 나도 모르는 새 2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게 뭐야. 잠깐 밭 몇 번 간 게 다인데. 그렇다. 진구의 목장이야기는 문명과 같은 타임캡슐 게임이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차근차근. 게임을 살펴보았다.

너네, 집에는 안가니? 단순명료한 스토리

집에 못 가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마냥 행복해 보이는 진구와 친구들. 죄다 정상은 아니다.
집에 못 가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마냥 행복해 보이는 진구와 친구들. 죄다 정상은 아니다.

스토리는 간단명료 그 자체다. 도라에몽과 친구들이 방학숙제를 하다가 이상한 시공의 폭풍(블리자드의 그 폭풍이 아니다.)에 휘말려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게 된다. 그 곳에 하나 있는 마을은 특이하게도 아이들도 일을 해야 하는 마을. 폭풍에 휘말리면서 도라에몽의 비밀도구가 모두 사라졌기에 아이들은 일을 하며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진구는 게임 제목처럼 목장 하나를 빌려와 열심히 꾸려나가게 된다. 스토리 자체는 굉장히 심플하고 직관적이지만, RPG 게임 충인 나로서는 그래도 이런 내용을 따로 설명해주는 칸을 만들어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도라에몽이 잃어버린 도구는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도구 하나하나마다 사연이 있어서 특정 마을사람에게 특별한 물건을 가져다줘야 비밀도구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비밀도구를 주운 마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원했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게임의 이름이 목장이야기인만큼 목장과 관련된 정보는 정말 세밀하게 시스템 칸 하나하나에 나뉘어 있으나, 스토리 진행에 필요한 정보는 캐릭터들이 대화로 언급 한 번 하고는 지나가버린다. 나중에는 누가 원했던 물건을 얻긴 했는데, 이걸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 몰라서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녀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소소한 불편사항이고, 전체적으로 스토리는 직관적이고 심플하여 이해하기 쉽다. 그 편이 도라에몽이라는 캐릭터에도 잘 어울리는 편이고.

동화를 보는 듯한 파스텔톤 그래픽. 힐링이란 이런 것일까

보고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래픽이다.
보고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래픽이다.

그래픽은 허술한 듯 아름답다. 게임 그래픽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캐릭터 디자인은 눈에 익은 편이고, 모든 등장인물이 만화의 그림체를 따르고 있어 둥글둥글한 느낌이다. 여기에 배경은 파스텔톤. 부드러운 파스텔 위에서 둥그런 캐릭터들이 아장아장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퍽 인상적이었다. 게임 자체의 용량이 크지 않아 많은 걸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세밀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무와 들판의 색이 달라지고, 아침과 낮, 저녁과 밤 시간대에 따라 물빛의 광택이 달라진다. 이 정도 그래픽과 이 정도 용량으로 구현할 수 있는 거의 최상의 그래픽 품질이랄까.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곡선 형식의 그래픽이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조작감도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가구 배치나 물을 줄 때처럼 진구의 세밀한 움직임이 필요할 때는 살짝 짜증이 나기도 한다.

이걸 언제 다하냐. 어마무시한 볼륨

낚시와 채굴장. 초반 주된 수입원이다.
낚시와 채굴장. 초반 주된 수입원이다.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어마무시한 볼륨이다. 처음 목장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나는 작물만 키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살짝 실망했다. 작물 키워서 팔고, 또 키워서 팔고. 그러면 끝 아닌가? 하지만 이 게임에서 작물은 게임의 일부에 불과하다. 작물은 처음에 심고 자리잡을 때만 할 일이 많지, 일단 심고 나면 최소 5. 길게는 10일 넘게는 물과 비료만 주면 그만이다. 오전 6시에 일어나는 우리의 부지런한 진구씨가 아무리 천천히 물과 비료를 주어도 10시면 모든 일이 끝난다. 그러면 이 때부터 무얼 하느냐. 처음 작물을 심을 때 나의 고민이었다. 돈이 없을 때는 그냥 주변에 있는 원재료들. 나무와 석재, 심지어 잡초까지. 이런 것들을 그냥 주워서 파는 게 다지만 어느 정도 돈이 생기고 나면 해야 할 일이 수두룩하다.(농사가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나는 게임을 통해 배웠다.) 낚시와 곤충채집을 할 수도 있고, 닭과 양, 소를 사서 키울수도 있다. 체력이 남으면 광산에 가서 열심히 곡괭이질을 할 수도 있다. 돈이 조금 들긴 하지만 요리 콘텐츠도 있어서 자유롭게 요리를 만들 수도 있다. 한 가지 콘텐츠가 살짝 질릴 때쯤, 도구 등급을 업그레이드 해주거나 계절이 바뀌면 또 다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니 지루하지도 않다. 계절은 한 달이 한 계절이다. 현재 내가 가을 중반까지 진행했는데, 아직도 즐기지 못한 콘텐츠가 수두룩하다. 바다낚시는 엄두도 못 내고 있고, 동물은 소와 양을 한 마리씩 간신히 키우고 있는 수준이다. 증축과 업그레이드도 이제 초보 티를 벗어난 정도라 적어도 게임 시간으로는 2년은 더 플레이 해야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그런데 진구는 거의 1년 가까이 집에 못 돌아가는데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인다.)

진구의 피땀이 섞인 작물과 동물들. 소소해 보이겠지만. 허접한 진구의 체력으로는 저게 한계다
진구의 피땀이 섞인 작물과 동물들. 소소해 보이겠지만. 허접한 진구의 체력으로는 저게 한계다

불친절하고 노가다가 강제되지만 재밌다. ? 뭔가 이상한데?

진구의 인생을 녹여 일궈낸 집 증축과 거기서 행한 첫 요리.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진구의 인생을 녹여 일궈낸 집 증축과 거기서 행한 첫 요리. 요리의 모양이 기괴하지만 넘어가자.

게임은 분명 재밌다. 한번 게임을 켜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플레이하게 되는 요소가 분명히 많고,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가 한 계절을 보내게 될 정도로 흡입력도 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게임은 아니다. 일단 첫 번째는 위에서 잠깐 언급한 너무 불친절한 퀘스트 진행. 퀘스트 진행을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코로보쿠르(요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탭이 따로 마련되어 있길래 얘네들을 찾고 싶은데, 가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이 자식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힌트도 주지 않는다. 그냥 요정이니 숲에 있을거야.’ 이런 식이다. 스토리 진행 중 만난 개가 바위 뒤에 갇혔는데 나는 그 개를 구조할 방법이 없어 한 달 넘게 방치 상태다. 게임 내에서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힌트를 알려주기는 하지만 이건 진짜 스쳐지나가는 수준이고 따록 기록으로도 남지가 않아서 게이머가 단순히 머릿속에 저장해 두어야 한다. 물론 내가 게임센스가 없어서 유별나게 느끼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 퀘스트에 무슨 물품이 필요한지는 알려줘야 그 물품을 찾아서 스토리를 진행할 것 아닌가. 자유도를 추구하느라 게이머의 편리함을 내던져버린 느낌이다. 두 번째 단점은 지나친 노가다다. 다양한 콘텐츠로 노가다의 지루함을 없애려 노력했지만, 이 게임은 노가다가 강제적으로 요구되는 게임이다. 어떤 콘텐츠를 즐기려면 도구의 업그레이드나, 건물의 증축이 필요한데, 거기에 필요한 자재는 노가다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요구하는 자재의 양이 꽤 많아서 금방 모을 수가 없다는 거다. 그리고 진구의 체력이 굉장히 허접해서 하루에 할 수 있는 작업양에 제한이 있다. 도구를 업그레이드하면 이런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되지만, 그렇다고 진구의 체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서 여전히 체력부족의 압박에 시달린다. 열심히 일하면 체력의 총량이 늘어난다든가, 같은 일을 반복하면 숙련도가 높아진다든가 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줬다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아마도 게임을 보다 쉽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 요소를 집어넣지는 않은 것 같다.

목장일 뿐만 아니라 무려 25명에 이르는 이 사람들과 친해져야 한다. 할 게 너무 많아서 뭘 먼저 해야할 지 모를 정도.
목장일 뿐만 아니라 무려 25명에 이르는 이 사람들과 친해져야 한다. 할 게 너무 많아서 뭘 먼저 해야할 지 모를 정도.

플레이 타임을 길게 잡고 편한 마음으로 즐기기 좋은 게임

인터페이스나 시스템적으로 불편한 요소가 있고, 노가다가 강제되는(, 여름, 가을. 90일동안 빡시게 일했는데 아직도 스토리 초반부를 벗어나지 못했다. ㅠㅜ) 부분이 있지만. 도라에몽 진구의 목장이야기는 확실히 재미있는 게임이다. 용량에 비해 게임의 가격이 조금 부담스러울 수는 있지만, 이런 농장 키우기류의 게임이나 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하는 이라면 꽤 장기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편안한 마음으로, 힐링하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싶은 게이머라면 고민하지 말고 플레이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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