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코즈 4 : 넓은 게 능사는 아닙니다

  • 입력 2019.01.25 13:22
  • 기자명 조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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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야말로 게임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플레이 타임이 20시간을 훌쩍 넘기는 제법 큰 규모의 게임들이 한 달에 몇 개씩이나 출시되는데, 정성스레 한국어화까지 된 작품도 몇 년 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많아졌죠. 학교나 직장 생활에 바쁜 사람들은 게임을 할 때도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내일부터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를 먼저 할지 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할지 고민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게임들 모두가 훌륭한 퀄리티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대체 어쩌다 게임이 이렇게 나와버렸을까? 제작진 내부에서 불화라도 생겨버린 걸까? 이 게임을 해보긴 하고 출시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감한 게임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 장애를 덜어주는, 어떻게 보면 정말 고마운 게임들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게임들을 피하지 못했을 때, 스팀에서 샀는데 2시간을 넘겨버려서 환불도 못할 때, 계속 하면 재밌어질 줄 알고 꾸역꾸역하다가 더 재미없어질 때, 이런 때는 정말 난감합니다. 화도 나죠. 억울한 느낌도 조금 듭니다. 그리고 제가 저스트 코즈 4를 플레이하면서 느껴던 감정이 딱 그렇습니다. 아, 마이티 넘버 나인도 피했던 내가 이걸 못 피하다니!

 

자연 경관은 뛰어난 편입니다. 멀리서만 보면.
자연 경관은 뛰어난 편입니다. 멀리서만 보면.

 

■ 넓고 아름답지만 세밀하지 못한 오픈 월드

저스트 코즈 시리즈의 특징하면 바로 넓은 오픈 월드입니다. 그 규모만큼은 다른 어떤 게임보다도 대단한 수준이죠. 저스트 코즈 4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 화면에서 2~3센티미터 정도로 표시되어 있으면, 아마 30분은 걸어야 이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대했던 대로 굉장히 넓은 편입니다. 그리고 지역마다의 독특한 특징을 잘 살리고 있는 편이라서 어디를 가나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느꼈다면 아직 월드의 5분의 1도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광활한 월드를 이동하는 것이 딱히 불편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현실성을 다소 희생시키고 편의성을 대폭 끌어올린 덕분이죠. 언제든지 차량이나 비행기를 소환할 수 있고, 가까운 거리는 그래플링 훅을 사용해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고지대에서 윙슈트를 이용해서 신속하게 날아갈 수 있고, 이 때 느껴지는 속도감도 괜찮은 편이라 윙슈트로 이동하는 재미도 어느 정도 좋습니다. 빠른 이동이 되는 포인트가 정해져 있어서 약간의 답답한 점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월드를 이동할 때의 편리함은 꽤 준수한 편입니다.

 

인물이나 배경 등의 표현력 부분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인물이나 배경 등의 표현력 부분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월드가 넓다 보니 아무래도 디테일은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지역별 특색을 주긴 했지만, 그 지역 안에서 이동할 때는 복사 – 붙여넣기 수준으로 별다른 특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나 보이는 차량은 거기서 거기고 마을이나 적의 기지도 딱히 차이를 느끼기 힘들 정도로 개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탐험하는 재미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죠. 돌아다니며 감상할 이유를 제시해주지 않고 그저 넓기만 한 월드. 돌아다닐 필요가 없는데 굳이 넓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월드의 특색이 없다면 월드와 상호작용할 이유라도 많이 만들어주면 그나마 낫겠죠. 하지만 이 게임엔 그런 장치 조차도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서브 미션을 배치해 둔다 거나, 동식물을 이용한 제작 시스템을 갖춘다 거나, 아주 인상적인 랜덤 인카운트를 만들어 두는 것도 괜찮은 방식이지만, 이 게임 어디에서도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어려운 코스의 비행이나 유물 찾기 같은 소소한 보조 미션들만 존재할 뿐이죠. 그래서 처음엔 넓고 예쁘고 신기하다고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미션 클리어에만 집중하게 되는 편입니다.

 

등장 인물들은 감정선을 살리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합니다.
등장 인물들은 감정선을 살리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합니다.

 

 

■ 성의가 느껴지지 않는 스토리와 미션

스토리의 시작은 대략 이렇습니다. 남미에 위치한 ‘솔리스’라는 섬에서 주인공 리코는 자신이 궁금해하는 비밀을 풀어나가게 되고 반란군을 규합하고 통솔하여 독재자에게 맞선다는 내용이죠. 설정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저스트 코즈 시리즈가 그동안 구축해왔던 세계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전작들을 잘 계승하고 있으며, 새로운 환경에 던져진 리코가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에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배경 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가 접하게 되는 이야기는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기와 승에서 천천히 사건과 감정선을 고조시키고 전에서 폭발을 시켜야 어느 정도 서사가 나오기 마련인데, 이 게임은 기–승에서 딱히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도 없이 뜬금없이 전으로 넘어가서 얼렁뚱땅 결로 마무리 짓는 모습을 보입니다. 도입부를 제외하면 주인공이 겪는 역경이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고, 인물 간의 갈등이 긴장감을 높이는 것도 아니며, 느슨한 전개를 뒤집을 만한 강력한 사건이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그냥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우연한 기회에 도움을 받고, 어쩌다 보니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이죠. 그저 전투와 미션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동기부여의 역할은 해주고 있지만, 스토리 감상면에서 이 게임에 특별히 기대할 부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의 유일한 장점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마구 터뜨릴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의 유일한 장점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마구 터뜨릴 수 있습니다.
탈 것도 많아서 마음껏 부수고 다닐 수 있죠.
탈 것도 많아서 마음껏 부수고 다닐 수 있죠.

 

 

■ 훌륭한 폭발, 하지만 어딘가 엉성한 시스템

화끈하게 터지는 것이 이 게임의 매력입니다. 반군의 입장에서 정규군의 시설을 테러한다는 콘셉트에 알맞게, 눈에 보이는 군사시설 대부분을 파괴할 수 있고 적의 거대한 차량이나 헬기도 시원하게 터뜨릴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을 부각하기 위해서인지 시설과 차량의 내구성도 상당히 낮게 설정되어 있고 약점 부위까지 존재해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쉽게 다 날려버릴 수 있죠. 스트레스 받아서 뭔가 다 날려버리고 싶다. 그런 기분이 들 때 이 게임을 하면 아마 화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게임에서 이 부분만큼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화끈한 폭발 뿐만 아니라 전투의 핵심 시스템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3인칭 슈터에 엄폐 기능이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애초에 이 게임은 그래플링 훅을 이용해서 넓은 장소를 빠르게 휘저으며 게릴라처럼 치고 빠지는 것이 핵심이라서 크게 문제되진 않습니다. 그리고 폭풍이나 번개 같은 기상 현상이 전투에 변수로 작용해서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의 폭이 다양해지기도 하죠. 이렇게 폭발, 그래플링 훅, 기상 현상을 주된 골자로 하는 시스템 자체는 꽤 괜찮은 발상에서 출발했다고 봅니다.

 

폭풍이나 번개 등 기상 상태를 시스템으로 사용하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습니다.
폭풍이나 번개 등 기상 상태를 시스템으로 사용하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이디어들이 제대로 활용되려면 다른 기초적인 부분이 튼튼하게 구축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 게임은 그런 부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지적할 부분은 조작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래플링 훅이나 윙슈트를 이용해서 전장을 누빈다는 발상 자체는 괜찮지만, 이런 장치를 이용할 때 조작감이 훌륭하지 않아 간혹 사용하기가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래플링 훅이 플레이어가 의도한 장소가 아니라 엉뚱한 곳에 붙어버려서 계획이 실패하기도 하고 윙슈트의 반응 속도도 어딘가 답답한 면이 있어서 짧게 펴고 다시 쓰기엔 어느 정도 부담이 따릅니다. 어느 정도 진행하다 보면 이 게임만의 물리 법칙에 적응을 하게 되지만, 적응하기 전까지는 꽤 불편한 상태로 진행하게 되죠.

미션 디자인에서는 무성의함이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미션이 개성없이 획일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얼핏 보면 종류가 많아 보이지만, 탐험 파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냥 터뜨리거나 탈취하는 것 중에 하나로 귀결될 정도로 단순하죠. 게다가 상당수 미션에 시간 제한을 걸어놨는데, 이 제한 시간이 굉장히 타이트할 뿐만 아니라, 그래플링 훅을 자유자재로 활용해야 클리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래플링 훅의 조작감이 상당히 좋지 않은 관계로, 10번 가까이 시도해야 겨우 성공할 수 있는, 다시 말해서 터무니없다고 느껴지는 미션들이 메인 미션으로 등장합니다. 펑펑 터뜨리면서 시원시원하게 진행하는 콘셉트로 제작한 게임에서 이렇게 의미없이 제한 시간만 짧게 걸어 놓은 미션이 등장하면 굉장히 난감하죠. 만들어 놓고 테스트를 많이 해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마치며

저스트 코즈 4는 분명히 장점이 있는 게임입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무 생각없이 패드를 붙잡고 닥치는 대로 다 부수고 다니기엔 이만한 게임도 잘 없죠. 쉽게 폭발하고 멋지게 터집니다. 다양한 탈것으로 넓은 지역을 횡단하고 노는 것도 나쁘지 않죠. 이번 작에 추가된 그래플링 훅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제법 신선하고, 플레이어의 편의를 위해 준비한 기능들도 충분히 많은 편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꽤 할 만한 게임이죠.

그러나 이런 장점도 기본이 탄탄해야 제대로 발휘되는 법입니다. 넓지만 디테일이 부족한 나머지 버려지게 되는 월드, 엉성한 조작감, 바보 같은 적과 동료의 AI, 과연 테스트를 해본 건지 의심이 드는 미션 디자인 등 기본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장점을 아득히 뛰어넘는 단점들이 산재해있는 게임입니다. 이래서는 이 작품이 그나마 가지고 있는 장점인 파괴의 미학도 제대로 발휘될 수 없겠죠. 최근에 이렇게 마음껏 부수고 다니는 게임이 잘 나오지 않아서 어느 정도 수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은 들지만, 그런 목적으로 이 게임을 구입하더라도 이러한 단점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생각하고 구매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넓이 말고 깊이에 신경 쓰는 게임이 되었으면 합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넓이 말고 깊이에 신경 쓰는 게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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