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리의 잔잔한 이야기. PC '레고 빌더스 저니' 리뷰

  • 입력 2021.06.29 17:02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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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덜트'를 대표하는 물건이자, 몇몇 어른의 한풀이 대상이 되는 이름 '레고'. 어릴 적 '사자성'이나 '해적선' 같은 레고를 만져본 기억이 있는 어른이라면, 이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나도 그 누구보다 '레고'를 좋아했지만, 쉽게 가지고 놀 수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게 미련이 남은 모양이다. 가끔 마트의 장난감 코너에서 '레고'를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멈춰서 구경을 하게 된다.

 

'레고'는 지금의 게임에 비유하자면, 최고의 '샌드박스' 장르였다. '해적', '중세기사' '도시' '우주' 같은 컨셉은 그 자체가 'DLC'다. 시리즈마다 포함된 블럭의 색깔과 피규어의 컨셉은 달랐지만, 완벽한 호환을 보여줬다. 해적이 우주선을 타고, 중세기사가 자동차를 타는 것에 제약이 없었다. 플레이어마다 '창작마당'에 올릴만한 걸작이 하나씩은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레고'를 만져본 기억은 없지만, 구매한 경우는 있다. 이때의 '레고'는 블록이 아닌 게임이다. 할인 목록에 '레고'라는 이름이 보이면, 플레이의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라이브러리에 추가했다. '레고'를 달고 출시된 게임을 보면 아이의 감성을 가진 어른을 공략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키덜트'가 아직도 열광하고, 또 어릴 적의 한을 풀 수 있을 만한 IP에 집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코믹스와 TV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DC'와 'MARVEL'이다. 여기에 '쥬라기 공원'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과 '호빗' '해리포터' 까지. '나 어릴 때, 그거 진짜 좋아했는데' 라는 생각이 드는 IP에는 여지없이 '레고'가 달려있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레고' 게임은 조금 다르다. '레고'를 대표하는 캐릭터 형태의 '피규어' 대신 블록 몇 개가 캐릭터를 대신하고, 방대한 맵대신 오밀조밀하게 잘 짜인 스테이지가 게이머들을 맞이한다. '레고 빌더스 저니'다.

'레고 빌더스 저니'는 간결한 퍼즐게임이다. 복잡하게 비틀지도 않았고, 계산이 필요하거나 숨겨진 요소를 찾아내야 하는 과정도 없다. 게임엔 예전 어린 시절 레고를 가지고 놀았던 정도의 추억만 있으면 된다.

 

하나의 '디오라마'를 보여주고, 그 위에 캐릭터를 세워뒀다. 목표는 어렵지 않다. 작은 캐릭터를 다른 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큰 캐릭터에 도달할 수 있도록 블록을 연결해주면 된다. 아이와 부모, 스승과 제자처럼 보이는 두 캐릭터를 같이 있을 수 있도록 이어주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는 어떤 제약도 없다. '레고'가 추구하는 가치처럼 퍼즐의 과정에서 정해진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주변에 흩어진 블록을 어떤 형태로든 사용할 수 있다. 그 결과물이 꼭 멋지거나 효율적일 필요도 없다. 그 경로를 설정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의 몫이다. 조금 틀어지거나 엇갈리게 블록을 쌓아도 상관없다. 물론, 사용할 수 있는 블록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정해진 블록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된다'는 규칙 외에 모든 것이 자유롭다.

조작은 '레고'답게 간단하다. 마우스 클릭으로 블록을 집고, 돌려서 조립하는 게 끝이다. 게임 컨트롤러도 지원하지만, 플레이는 마우스가 조금 더 편하다. 다만, 한 가지 불편한 것은 시점의 전환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하나의 디오라마를 조금 더 자유로운 시점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게임에서는 화면을 돌릴 수 있는 각도가 제한되어있다. 간혹 시야가 나오지 않아서, 쌓아 올릴 블록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각각의 스테이지마다 '탑뷰'가 간절한 경우가 있는데, 시점을 고정할 수도 없고, 360도 모든 방향을 지원하지 않아 엉뚱한 곳에 블록을 놓는 경우도 생긴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블록'을 확인 하는 것도 시간이 좀 필요하다.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블록은 주변에 흰색 테두리가 생기는데, 직관적이지 못하다. 이게 지형지물인지, 아니면 사용할 수 있는 블록인지는 일단 포인터를 올려서 집어봐야 알 수 있다. 

'레고 빌더스 저니'는 UI를 모두 걷어냈고, 캐릭터도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캐릭터는 표정이 없다. 움직임도 단순하다. 이야기를 풀어줄 대사나 내레이션 같은 텍스트도 없다. 자연스레 플레이어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곧 스토리가 된다.  스토리의 흐름도 정해진 답은 없다. '레고' 답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관계는 가족일 수도 있고, 스승과 제자일 수도 있다. 게임 초반부에는 작은 캐릭터와 큰 캐릭터가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캠핑처럼 보이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같이 건물을 쌓아 올리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큰 캐릭터는 간접적으로 표현된 '노동'과 '어둠'을 체험한다. 부모 혹은 스승으로 보이는 큰 캐릭터는 이 '노동'처럼 보이는 행위 때문에 작은 캐릭터와 함께 소통하지 못한다. 이때 나무, 물, 자연을 체험하는 작은 캐릭터는 지하실에서 '로봇'을 만나면서, 큰 캐릭터의 시간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유추일 뿐이지 공식적인 스토리는 아니다. 

'레고 빌더스 저니'는 굉장히 정적인 게임이라 쉽게 지루할 것 같지만, 그 밋밋함을 그래픽과 사운드가 가득 채운다. 특히 레고 특유의 플라스틱 조각이 짤그락거리는 소리와 잔잔하게 깔리는 배경음이 마음에 든다. 캐릭터가 움직일 때 내는 귀여운 소리도 게임과 잘 어울려 퍼즐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만든다.

 

'레고' 게임은 오직 '레고' 블록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인 만큼 그래픽에서는 뛰어난 효과를 보여주진 못한다.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번 '레고 빌더스 저니'는 이런 단점을 '레이 트레이싱' 기술로 극복했다. 아마 게이머들이라면 '레이 트레이싱' 기술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기술적인 부분을 조금 설명하자면, 이번 '레고 빌더스 저니'는 세계 최초로 '레이 트레이싱'이 적용된 '유니티' 게임이다. 엔비디아의 지포스 RTX 시리즈의 그래픽카드를 사용하는 게이머라면 'DLSS' 기능을 통해 더 현실적인 비주얼과 성능을 경험할 수 있다. 쉽게 '빛의 반사 효과'를 최대한 현실처럼 표현한 기술로, '오 딥러닝' '때깔 기가 막힌다'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실제 블록에서는 느낄 수 없는 광원 효과를 사용한 만큼 눈은 즐겁다. '레고'가 게임으로 들어와서 표현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레고가 해봤자 레고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게이머들이라면 조금은 호기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무리 최신 기술을 사용했고, 또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라고 해도, 장르 자체의 한계는 쉽게 극복하지 못했다. '레고 빌더스 저니'는 어디까지나 '퍼즐'을 배경에 둔 게임이다. 여기에 쉽고 단순함을 추구한다. 플레이어에게 '이야기'를 보여주고 자유롭게 생각하길 원하는 게임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요소가 거의 없다는 것은 '힐링'이라는 측면에서 장점이 되겠으나, 느슨한 분위기는 게임을 지루하게 만든다. 

 

이야기 흐름에 방해가 되는 반복 구간이 종종 등장하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조립'이라는 단 하나의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되다 보니 '박진감'이나 '긴장감'은 기대할 수 없다. 게임에서 제시하는 '퍼즐' 역시 도전 의식을 느끼게 할 정도로 어렵지 않다. 스테이지가 진행된다고 해서 새로운 방식이 생긴다거나, 난이도가 오르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하고 간결하다.

 

'예쁘다' '힐링 된다' 이런 감정은 느낄 수 있겠지만, 그 잔잔함을 견디지 못하는 게이머에게는 시시하고 밋밋함만 느껴질 게임이다. 이 부분은 플레이할 게이머가 인정하고, 타협해야 한다.

'레고 빌더스 저니'는 확실히 기존의 '레고' 게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유명 영화나 코믹스의 주인공이 등장하지도 않고, 넓은 맵을 뛰어다니면서 전투를 하지도 않는다. 유쾌하게 날뛰며 아이템을 먹는 것 대신, 잔잔하지만 생각할만한 이야기를 빛과 소리를 통해서 보여준다. 

 

'재미'보다는 '힐링'이 어울리는 게임이다. 어렵게 만들지 않았고, 긴장보다는 편안함을 느낀다. '레고'가 가진 특성을 게임에서 잘 활용했고, 이를 풀어내는 스토리텔링도 매력적이다. 풀어내는 이야기 역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내용을 담았다. 재미는 부족할지 몰라도 감동은 묻어난다.

 

현실이나 게임이나 '레고' 최대의 단점은 바로 가격. 게임의 플레이타임은 짧은 데 가격이 높아 '가성비'는 좋지 않다. 하지만 '레고'는 원래 그런 존재였다. 비싸도 일단 사는 게, 일단 라이브러리에 추가하는 게 '레고'다. '게임성'보다 조용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느껴보고 싶은 게이머라면 망설일 필요 없이 플레이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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