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노티카 빌로우 제로, DLC급이어도 재미와 성취감은 여전

  • 입력 2021.05.24 14:55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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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브노티카(Subnautica)를 즐기면서 그동안 ‘제조’와 ‘연금술’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심해 속을 탐험한다기보다 진일보한 기술들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만족감과 보람이 내 머릿속을 환기 시켜주었고, 꽤 뿌듯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게임 덕분에 전통적인 RPG 게임들이 여럿 스쳐지나갔는데 특히 궁극의 무기 하나 제작해 보겠다고 밤새 던전 속을 헤맸던 ‘파이날 판타지’류의 RPG 게임들이었다. 희한하게도 아이템 하나 찾는데 수십 시간이 걸려도 지치거나 지루할 틈도 없었으니, 그만큼 게임성에 있어서 동기부여와 목표 의식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서브노티카 빌로우 제로(Subnautica Below Zero)는 반가운 면도 있었지만, 아쉬운 면도 있었다. 탑승할 기계부터 주거지까지 해당하는 재료를 찾고, 건설하는 재미는 여전하지만, 전작과의 차이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서 사실상 DLC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아마 서브노티카를 이미 즐긴 게이머라면 이번 빌로우 제로를 손쉽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라서 전작의 그 웅장함은 기대하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브노티카에는 공급과 수급의 원리, 여기에 생존 심리까지 작용하면서 훌륭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처음 접하는 게이머라면 전작과의 연관성은 상관하지 않고, 큰 포부와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기지 건설부터 시작해서 탑승할 기계들의 제조와 업그레이드 등 모든 것이 성취감으로 가득해 있기 때문에 오랜만에 게임 콘텐츠에 푹 빠져보는 게이머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빌로우 제로는 전작 이후 2년이 지난 시기로 설정하였다. 주인공 로빈 아유는 자신의 언니가 알테라 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의문의 사건들을 추적하기 위해 떠났다가 4546B라는 해양 행성에 불시착한다. 덩그러니 하나 남은 구명 포드 속에서 수수께끼의 건축가와 미스터리한 외계 생명체의 존재 등 다양한 의혹들을 풀어 나가야 한다.

게임은 전작처럼 먼저 수분과 허기를 채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제작기’에서 무엇을 제조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로빈의 구명 포드로 공급할 다양한 물고기와 기본 자원들을 볼 수 있다. 구리 광석이나 티타늄, 은, 금, 리튬, 납 등 대부분은 광맥을 조각 내서 얻을 수 있고, 가치가 높은 자원일수록 더 깊은 심해로 빠져들어야 한다. 전작을 충분히 즐긴 게이머라면 알겠지만, 이 게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캐너를 제작하는 것이다. 스캐너가 있어야 여기저기 흩어진 파편들을 모아서 생존에 필요한 물품의 청사진을 얻을 수 있고, 제작기를 통해 직접 제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생존 칼과 표준 산소 탱크, 물갈퀴, 나침반 등 탐험에 필수적인 아이템들도 모아야 한다.

이 게임이 재밌는 건 백지 상태에서부터 시작하는 그 무책임한 전제에 있다. 방금 생존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일일이 열거하였는데 게임에 들어가면 제작에 필요한 안내 문구나 튜토리얼도 없다. 산소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바닷속을 탐구하다가 우연히 ‘시글라이드’ 파편을 찾게 되고, 그 파편들을 필요한 양만큼 모두 스캔하게 되면 직접 제작기에서 제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다. 시글라이드는 바닷속을 더 빨리 이동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에 꼭 필요한 필수 아이템이다. 앤디 위어의 ‘마션’처럼 홀로 남아 생존할 방법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를 보았다면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자신의 지식이 우연히 써먹히고 있는 모습에 놀라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서브노티카의 세계에서는 단순히 게임식으로 풀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청사진을 찾는 작업이 의외로 만만치 않다. 전작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 게이머라면 어떤 아이템이 필요한지부터 척척 진행할 수 있겠지만, 처음 이 세계관에 들어왔다면 아마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주거지 건설 개념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면, 그 사실을 파악하는 것조차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산소 공급이다. 게이머가 제대로 심해를 탐험하려면 표준 산소 탱크도 필요하지만, 재호흡기는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재호흡기가 없으면 100m 이하로 내려갈 때마다 산소가 급격히 떨어지게 돼서 매우 번거로운 일이 될 수 있다. 이번 빌로우 제로는 전작과 달리 캐릭터들이 여러 명 등장하고, 상호작용 부분도 많이 늘어났다.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진행하다 보면 꽉 막혀서 답답한 구석이 없지 않은데 특히 산소 공급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산소 공급이 필요 없는 시트럭을 제작했다면 다행이지만, 이 시트럭조차도 초반에는 150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기계에 손상을 입는다. 시나리오는 생각보다 더 빨리 심해로 들어갈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재호흡기는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문제는 재호흡기라는 아이템이 있는지도 모르는 게이머들이 허다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재호흡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게이머들이라면 ‘생고생’을 했다는 생각에 분노를 금치 못 할 수도 있다. 물론 게임에서는 단순한 멘트를 통해 힌트를 주고는 있지만,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그런 시행착오가 이 게임의 또다른 매력일 수는 있지만, 번거로운 작업이 지속되면 당연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부터 할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빌로우 제로의 바닷속은 그리 넓지 않고, 심해 공간도 여러 번 들르게 되면 절로 눈에 익게 된다. 처음부터 자원의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우연히 파편을 찾게 된다면, 그 지리도 익혀두면 된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이템의 존재 유무를 파악하는 것인데 재호흡기와 시트럭 제조만 넘기면 그때부터 게임은 본격적으로 탐험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탐험을 하다 보면 유난히 파편들이 모인 곳을 찾을 수 있는데 이곳에서 중요한 데이터 자료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필수 아이템 파편 등 최소한 한 개 이상은 있으니 수분이나 허기를 채워주는 아이템만 있을 때는 먼저 자신의 눈부터 의심해 보는 것이 좋다. 특히 이 게임에서는 청사진을 해금할 수 있는 파편들이 꽤 중요하기 때문에 우연히 중요해 보이는 파편을 찾았다면 그 부근을 열심히 탐구하는 것이 좋다. 물론 파편이나 자원을 찾을 수 있는 한정적인 공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공간을 미리 공략적인 측면에서 알고 게임을 플레이하면 이 게임의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게임의 아트 스타일은 괜찮은 편이다. 4K 해상도에 여러 그래픽 옵션이 있어서 본인의 사양에 맞춰 즐길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 텍스쳐 품질이 AAA급보다는 여전히 한참 못 미치기 때문에 중요한 파편이나 데이터 자료를 찾았을 때 그냥 지나쳐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시각적으로 눈에 확 띄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관찰에 소홀하는 경우가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상호작용이 늘었다는 건 전작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면서도 단점이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빌로우 제로는 여전히 성취감이 높은 게임이다. 전작과는 다르게 바닷속이 그리 넓지 않아서 의외였지만, 처음 접하는 게이머들에게는 더 나은 적응력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한 게이머라면 2018년에 출시했던 전작 역시 이어서 즐겁게 탐험할 여지도 있다. 주거지를 설치하고, 하나의 작은 해상 도시를 건설하면서 끝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 게임은 더 멋진 탑승 기계들이 기다리고 있고, 계속해서 파편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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