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V Civil Battle Royale, 아무리 얼리 엑세스라고 하지만…

  • 입력 2021.04.22 14:36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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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터 랩(Raptor Lab) 개발진이 제작한 ‘GangV Civil Battle Royale(이하 GangV)’은 GTA(Grand Theft Auto) 시리즈의 모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진은 ‘War Dust’와 ‘Stand Out’, ‘IrreVRsible’ 등 주로 VR 게임들을 제작했고, 이번에 내놓은 GangV 역시 VR에 최적화 되었다. VR 장비가 없는 게이머도 GTA 시리즈처럼 3인칭 시점으로 플레이를 즐길 수 있지만, 개발진의 의도를 완전히 체감하기는 힘들다. 스마트 시계 보듯이 지도를 펼칠 수 있는 기능이나 180도 방향으로 전방을 확인할 수 있는 드라이브, 총으로 위협하는 액션 등 VR만의 여러 기능이 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얼리 엑세스(Early Access)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끔찍한 모델링과 버그로 가득해 있다. 게이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도상에 지정된 장소로 이동해서 누군가를 살해하고, 그 사업권을 빼앗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도 기대하지 말라. 누군가를 살해하는 것일 뿐, 사업권을 빼앗는 그 일련의 과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마치 살해라도 당해야 하는 것처럼 기다리고 있다. 더 솔직히 털어놓자면, 이 게임은 NPC라는 용어 자체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이런 식으로 개발해 놓고, 얼리 엑세스 핑계를 대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강한 의심이 든다.

이 게임은 싱글 플레이나 캠페인도 없다. 배틀로열과 오픈월드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 이후에 다시 메인 옵션으로 돌아와서 선택지를 바꿔도 달라지는 건 없다. 개발자의 입장에서 비유해 보자면, 이벤트 장면으로 가는 브릿지 자체를 설정하지 않았다. 이 게임은 체크 포인트나 재시작 같은 개념 자체가 아예 없다. 튜토리얼도 만들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GTA 시리즈의 외관만 흉내를 낸 일종의 백업 프로그램만 테스트 삼아서 돌린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런 게임을 돈으로 지불하면서까지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들 정도다.

먼저 게임을 시작하면 원하는 캐릭터를 선택하고, 상점에서 코스튬을 구매할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사업권이나 돈이 없기 때문에 무시해도 된다. 이제 선택된 캐릭터가 출발지에서 춤을 추면서 등장하는데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자동차에 탑승해서 지도상에 지정된 건물로 이동한다. 근방 건물로 이동하다 보면 ‘Owner’ 단어가 보이면서 알람이 뜬다. 이 건물 주인을 제거하고, 사업권을 빼앗으라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인으로 지정된 캐릭터에게 총알 한 번만 박아주면, 사업권은 게이머의 몫이 된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그 어떠한 저항도 없다는 것이다. 게이머가 총을 꺼내서 겨냥하면 손을 들면서 항복을 하는데 잠시 기다리면 돈을 꺼낸다. 그 돈을 빼앗아서 상점을 이용하거나 각 건물에 배치된 무기를 구매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유비 소프트의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게이머를 기다리는 건 매우 낡은 모델링 캐릭터가 무미건조하게 서 있는 것뿐이다.

다행히도 소유주의 저항이 없는 대신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 게임의 물리 충돌 구현이 워낙 게을러서 경찰차들이 서로 오합지졸 상태로 다가오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나가는 자동차와 충돌해서 차가 뒤집히거나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건물과 이중추돌하는 그런 현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게임 개발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물리 충돌 계산만 열심히 하면 현실적인 트래픽 잼을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은 그런 노력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스팀의 얼리 엑세스 심사 규정을 더 엄격하게 바꿔야 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무엇 하나 정성이 보이지 않는 게임이다.

지도는 매우 넓어 보인다. ‘M’ 키를 눌러서 전체 지도를 보면 실제로 광활하게 제작되어 있다. 하지만 게이머가 지정된 건물로 이동하다 보면 똑같은 건물이 계속 보인다는 걸 금세 할 수 있다. 본인은 패스트푸드점만 몇 번을 이동했는지 모를 정도로 반복적인 플레이를 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VR로 플레이한다면 어떨까? 최근 게이머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오큘러스 퀘스트2로 즐기면 어느 정도 VR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먼저 스마트 시계 보듯이 손목을 들어 보면 미니 사이즈로 지도를 볼 수 있다. 자동차를 타면 라디오 주파수나 볼륨도 조절할 수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VR용 게임인 VR Worlds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디테일이다. 캐릭터 모델링이 워낙 낡아서 그렇지, VR로 접근해서 총을 들이밀면 나름대로 그럴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게임성 자체가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VR로 즐기는 것도 한계에 다다른다. 자동차가 비스듬히 충돌할 때 옆으로 뒤집히는 장면을 우리는 영화나 게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게임도 그런 물리 충돌을 구현했는데 판정 효과가 워낙 디테일하지 못 해서 360도 돌아버려서 착지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VR로 플레이하면 멀미 증상도 쉽게 일어날 수 있다. 그것도 예상치 못하게 차가 풍선처럼 붕 뜨는 경우가 많아서 거부감이 더 강하게 들 수밖에 없다.

GTA 시리즈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금적인 요소도 큰 영향을 줬다. 길거리를 걷는 죄 없는 시민들에게 총을 난사하거나, 경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논란거리가 됐지만, 리얼리티라는 명분 덕분에 엄청난 화제가 됐다. 그리고 그 뒤에는 ‘죄책감’이라는 감정도 사로잡고 있었다.

GangV도 기겁하는 시민들에게 무턱대고 총을 쏴 버릴 수도 있고, 경찰에게 자동 소총이나 로켓포를 발사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GTA 시리즈처럼 전혀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게이머의 모델링 자체가 워낙 대충 제작한 탓도 있지만, NPC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그저 로봇처럼 서 있기만 하니, 오히려 개발진을 향한 분노가 더 커질 수도 있다.

놀라운 점은 텍스처를 입히기 전 단계인 ‘객체’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캐릭터나 건물 등을 ‘객체’로 인지하고, 그럴 듯한 텍스처로 입히기 전에 도형을 하나 제작한다. 쉽게 말해서 크기가 다른 정사각형 세 개를 사람의 얼굴과 가슴, 다리의 뼈대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게임 도중에 그런 정사각형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지금까지 스팀 얼리 엑세스 게임을 여러 플레이해 봤지만, 이 정도로 끔찍한 경험은 처음이다.

그나마 이 게임에서 잠시 긍정적인 감정이 흐르는 구석을 찾아보자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트랙이다. GTA류의 게임들이 늘 그렇듯, 이 게임도 사운드트랙 선정은 제법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NPC의 이해조차 없는 듯한 성의 없는 게임 전개와 웃음밖에 안 나오는 물리 충돌 구현을 보고 있자면, 인디 개발진을 향한 이해보다는 분노가 더 앞선다. 얼리 엑세스라고 하지만, 베타 테스트 그 이하로 제작해 놓고, 지불까지 하면서 플레이하라는 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각종 건물 위에 떠 있는 간판으로 인물들이 몇 명 뜨는데 아마도 개발진 스태프나 관계자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이 게임 자체가 지불의 값어치가 없는 베타 테스트 이하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얼리 엑세스를 지나서 피드백을 충분히 받고 난 다음이라면 게임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으나 매우 끔찍한 플레이였다. 개발진이 지금까지 주로 VR 게임을 제작했다는 점을 미루어 고려해 보면 최대한 많은 피드백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1인 개발자나 그 소수 개발진들이 취미 삼아 게임을 개발할 수도 있으나 엄연히 게임 개발이 ‘장난’은 아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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