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워리어'의 자격을 증명하라! PC '나노테일: 타이핑 크로니클' 리뷰

  • 입력 2021.04.22 14:35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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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컴퓨터'라는 물건이 가정에 널리 보급되던 시기. 당시 대부분 어른은 '삼보'나 '세진' 같은 이름을 그저 '비싼 오락기' 정도로 생각했었다. 물론 아직도 컴퓨터를 오락기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어쨌든 당시 어른들의 잔소리를 버티며 자란 '게이머'에게는 몇 가지 중요한 스펙이 요구되기도 했다. 

 

2021년에는 자랑조차 하기 민망한 것들이다. '재미있는 게임 구하는 법' '친구집에 있는 게임을 내 PC에 복사하는 법' '디스켓 20장에 맞춰서 압축하는 방법' 같은 것들이 하나의 '능력'이자 ‘스펙’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이런 것들은 시간이 흘러 PC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전,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번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스펙을 하나 꺼내 볼까 한다. 어떻게 보면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추고 있는 기본소양. '어느 정도까지는 올릴 수 있지만, 최정점에 다다르기까지는 많은 훈련이 필요한' 능력. 이제는 사라진 그 질문. '타자 몇 치냐?'하는 '타자 속도' '타수'의 이야기다.

주어진 단어나 문장을 오타 없이 빠르게 친다는 것이 뛰어난 능력으로 평가받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속기사'라는 직업이 있었지만, '두벌식 자판'으로 빠른 타수를 보여준다는 것은 주변의 눈길을 받기에는 충분한 능력이었다. 믿지 못하는 세대도 있을 것이지만, 확실한 것은 '한컴 타자 연습'이나 '베네치아'라는 프로그램이 당시의 모습을 담은 채로 이름을 남겼다는 점이다.

 

게임과 타이핑속도가 무슨 관계가 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은 이 '빠른 채팅 속도'가 언제 필요한지 알 것이다. '게임에서 시비가 붙었을 때' '남 탓을 할 때' '심리전을 통해 상대방을 흔들어야 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 '키보드 워리어'라는 특정 부류에 맞서야 할 때다.

 

이제는 다양한 온라인 게임이 '베네치아'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미 주어진 단어나 문장을 따라서 타이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유저들과의 '실전 압축' 교전을 통해 그 수준은 계속 발전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게임은 바로 이런 '키보드 워리어'의 자질을 시험해볼 수 있는 게임이다. 바로 '나노테일: 타이핑 크로니클'이다. 

 

이 게임은 기존의 컨트롤러나 마우스를 사용하는 게임과 다르다. 애초에 필요가 없다. 오로지 '타이핑' 만으로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특한 형태의 게임.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한 번 살펴보자.

주인공 '로잘린드'는 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이자, 세상의 다양한 생물을 기록하는 '기록자'다. 정확히 언급하진 없지만, 게임의 이야기는 '로잘린드'의 불분명한 꿈과 '다시 가져올 수 있을까?' 라는 누군가의 목소리에서 시작한다. '로잘린드'는 그녀의 스승인 '라벤더'가 준 '견학 공책'을 받고, 이게 게이머는 앞으로 발견하게 되는 모든 것을 기록하며 게임의 야이기를 풀어나간다. 

 

게임에서 마주하는 단어들을 기록하는 것이 곧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게임의 핵심은 '타이핑'이다. 필드 위에서 만나는 오브젝트나 몬스터, NPC와의 상호작용은 모두 '타이핑'으로 진행된다. 주어진 단어 중에 어떤 것을 타이핑하느냐에 따라가 몬스터를 해치울 수도 있고, 퍼즐을 해결하며 이야기를 진행할 수도 있다. 

 

게임의 장르는 퍼즐 어드벤쳐. 다양한 형태의 오브젝트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늘 생각해야 하고, 숨겨진 길 찾기에 익숙해야 한다. 정확한 진행 방향이나 목표가 설정되진 않지만, 주변의 사물이나 NPC와 상호작용하다 보면 몇몇 퀘스트를 얻게 된다.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큰 흐름은 정해져 있다. 많은 단어를 기록하면서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다. 

'타이핑'이 거의 전부인 게임인 만큼 조작도 이에 맞춰져 있다. 플레이어는 그동안 익숙하던 'WASD'와 마우스 클릭, 컨트롤러의 버튼 대신 키보드의 자음과 모음에 집중해야 한다. 기본 이동은 방향키로도 가능하지만, 언제든 타이핑을 바로 할 수 있도록 'ESDF'로도 움직일 수 있다.

 

'나노테일'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는 각각의 고유한 단어를 가지고 있다. 적에게 피해를 주거나, 행동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머리 위에 제시된 단어를 빠르게 타이핑해야 한다. 형태만 조금 변화했을 뿐이지 '타이핑을 통해 없앤다'는 방식은 앞서 계속 언급한 '베네치아'와 비슷하다.

 

오브젝트나 몬스터는 유형에 따라 자주 사용되는 단어들이 정해져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고정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속성과 관련된 단어들로 꾸준히 변화한다. 몬스터의 유형도 다양한 만큼 뒤로 갈수록 위협적인 패턴을 가진 적들도 등장한다. 이런 적들은 제시되는 단어도 복잡하고 길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고 정확한 타이핑을 해야 한다.

 

플레이어는 언제든 주문을 취소하고 '로질렌드'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몬스터가 너무 가깝게 다가온다면 멀리 도망칠 수도 있고, 특정 위치로 유인해서 오브젝트를 활용할 수도 있다. 전투가 복잡할 수도 있지만, 결국 신속 정확한 타이핑만 있다면 어렵지 않다.

'퍼즐 어드벤쳐' 장르에서 봤을 때 '나노테일'은 크게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없다. 특히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어느 정도는 범위에 들어오는, 그리고 해결책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평타'에서 그 이상의 경험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퍼즐을 풀기 위해서는 오브젝트의 활용과 순서가 중요하다. '나노테일'에 등장하는 오브젝트는 맵의 지형을 바꾸기도 하고, 몬스터를 해치우기도 한다. 일단은 불, 얼음, 숲과 같은 지형이 어떻게 연계되어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떤 타이밍에 마법을 사용해야 할지를 잘 계산해야 한다.

 

'로질랜드'가 사용하는 주문 역시 이런 오브젝트와 연관된다. '로질랜드'의 마법에는 직선, 당기기, 밀기, 범위 확장, 불, 얼음 등의 속성을 사용할 수도 있다. 주문을 사용할 때마나 '큰' '당기기' '선형' 같은 주문을 타이핑 해야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맞춘 주문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퍼즐 어드벤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어느 정도는 뺑뺑이를 돌아야 하고, 진행하면서 놓친 부분이 있다면 다시 찾아와서 찾아야 한다. 최대한 맵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NPC와의 대화를 잘 읽어보는 게 도움이 된다.

'나노테일'은 고전적인 방식을 최신 기술력에 도입한 게임이다. 진행 자체가 굉장히 신선하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다시 꺼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마우스 클릭과 컨트롤러의 버튼이 얼마나 편리했던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게임이기도 하다. 게임의 모든 것을 타이핑으로 해결해야 하니 굉장히 피곤하고, 또 오랫동안 플레이하다 보면 손목이 아프기도 하다. '신선하고 독특하다'와 '재미있네'는 다르다. 게임이 기존과는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나노테일'은 아직 한국 게이머가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글 입력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리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영어'로 설정하고 플레이했다. 평소엔 사용하거나 볼일도 없을 어려운 영어 단어를 하나씩 타이핑하면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은 피곤하고 짜증만 유발할 뿐이다. 게임이 '영타'를 요구하다 보니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길고 생소한 단어를 입력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더 심해진다. '영타'를 연습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한글도 아닌 '영어 타이핑'에서 재미를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특정 구간에서의 프레임 드랍도 빨리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그래픽의 높고 낮음 설정의 옵션 문제가 아니라, 게임 자체에서의 프레임 드랍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공식 시스템 요구 사항도 그리 높지 않은 만큼 '가볍게' 접근한 게이머들에게는 굉장히 거슬릴 수 있을 것이다. 

 

'나노테일'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게임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추천하기 어려운 게임이다. 게임의 신선함은 인정하지만, 게이머가 이런 재미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한글'을 기대한 국내 게이머를 맞이할 준비가 안됐다. 오래전 '한컴 타자 연습'과 '배네치아'를 기억하는 게이머라면 완벽하게 게임이 다듬어 질 때까지 조금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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