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어곤(Foregone),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메트로베니아

  • 입력 2021.03.04 12:50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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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스팀으로 출시됐던 메트로베니아 장르에는 몇 가지 공식이 보였다. 화려한 픽셀 아트 그래픽과 RPG 형식, 여기에 ‘로그라이크’ 장르까지 섞이면서 ‘데드셀(Dead Cells)’이라는 훌륭한 인디 게임도 등장했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출시한 ‘포어곤(Foregone)’은 ‘데드셀’과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입체적인 모션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애초부터 3D로 모델링하여 카메라 스크립트를 통해 픽셀화 되었다. 이미 ‘데드셀’을 플레이했던 게이머라면 ‘포어곤’이 익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픽뿐만 아니라 물리 충돌 구현, 광원 효과 등 모든 것이 ‘데드셀’을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게임은 ‘데드셀’의 프리퀄이나 거대한 튜토리얼 버전으로 느껴졌다.

과학 연구의 중심지였던 도시 ‘캘러건’이 경쟁 도시로 인해 위기에 빠졌다. ‘캘러건’의 연구 자료를 빼돌리기 위한 시작된 이 전쟁은 내부적인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마지막 희망으로 ‘심판자’를 개발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전쟁이 치러지면서 예측할 수 없는 위기가 계속되자 ‘심판자’의 역할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게이머가 조종할 ‘심판자’는 이른바 ‘슈퍼 솔저’로 ‘데드셀’의 안드로이드 버전으로 이해하면 된다. 기본 근접 공격에는 딜레이 핸디캡이 동반된 콤보가 있으며, 장거리 공격은 근접전으로 충전시켜야 한다. ‘데드셀’과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인 전투는 거의 비슷하다. 무기들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데 전초 기지에서 대장간을 통해 판매하거나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 밖에 캐릭터의 스탯을 올려줄 마법사가 있고, 속도전 형식의 서브 미션도 준비되어 있다.

스킬은 상황에 따라 바꿔서 장착할 수 있는데 전투 중에 얻는 소켓으로 ‘스킬트리’를 쌓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체력을 올려주는 ‘회복’ 시스템이 가장 좋았지만, 짧은 전투로 이루어진 보스전에는 ‘장벽’ 시스템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초반 공격 3회를 무효화하고, 공격 속도까지 빨라지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사망하면 화폐라고 할 수 있는 오브와 정수가 사라지고, 나룻배 업자에게 일부를 얻을 수 있다. 사실상 ‘다크소울’이나 ‘인왕’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메트로베니아’ 장르의 최근 공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포어곤’이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메트로베니아’ 장르치고는 난이도가 평이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게임의 중반 스테이지까지 물 흐르듯 즐길 수 있었으며, 눈살을 찌푸릴 만한 전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임 초반에는 지도가 필요 없을 정도로 길 찾는 것도 무난했는데 비밀 장소나 함정 등 스트레스를 줄 만한 요소도 별로 없었다. 디자인 레벨이 그만큼 아주 간략하게 제작되었다. 레이아웃은 눈으로도 쉽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지루한 순간이 없다. 플랫폼 장르 게임에서 오는 애로 사항도 보이지 않아서 ‘심판자’의 액션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비밀 장소를 발견하든, 함정을 피해서 대시를 하든,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재빠르다.

전투는 ‘데드셀’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보면 된다. 모든 기본 공격은 마지막 결정타가 뒤늦게 발동되는 핸디캡이 있지만, 슬라이딩과 대시가 언제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싸울 수 있다. 본인은 ‘회복’ 스킬과 앞으로 돌진하는 ‘서지’ 기술을 사용했는데 패드 진동도 작동하기 때문에 진지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치명타가 들어갈 때마다 강한 진동이 오고, ‘서지’ 기술이 여러 명에게 적중되면 묵직한 타격감과 함께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적들을 만날 때마다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물론 무리하게 접근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지만, 침착하게 임하면 사망하는 경우는 별로 생기지 않는다. ‘마계촌’이 지옥이라면 ‘포어곤’은 천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게임을 중반까지 넘기면서 어떤 메커니즘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적들의 공격이 대부분 획일화 되었다는 것이다. 마계촌처럼 일사분란하게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라 계획된 패턴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무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같은 맥락에서 보스전은 어마어마한 도전을 제공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보스를 만날 때마다 그 패턴이 굉장히 단순하다는 걸 느꼈고, 돌파하는 방법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록맨 11’이나 ‘블러드 스테인드 : 리추얼 오브 더 나이트’처럼 생각지 못한 꼼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있는 그대로 받아치면 된다. 물론 패턴을 파악하기 전까지 사망하는 일은 생긴다. 하지만 그 간극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메트로베니아 장르를 처음 접하거나 생소한 게이머들이라면 아주 무난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중반을 넘기면서 언제부턴가 게임이 반복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소 표준적으로 보였던 스킬트리처럼 게임성 자체가 틀에 박혀 보였는데 역시나 평이한 난이도 때문이었다. 이 게임에도 엄연히 퍼즐 요소가 있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여타 게임들처럼 뻔뻔한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스위치와 게이트 사이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헤맬 이유도 별로 없고, 플랫폼 게임의 특성도 그리 크지 않아서 막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술술 흘러가는 전개가 장점이기는 하지만, 풀어나가는 재미는 보이지 않는다.

전투 부분에서도 다소 식상해지기 시작한다. 본인은 중반까지 가면서 ‘서지’ 기술을 거의 쓰지 않았다. 비교적 강한 적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거나 진동의 손맛을 느끼고 싶을 때 사용하긴 했지만, 슬라이딩과 대시만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역시나 적들의 단순한 패턴 때문인데 위급한 상황이 좀처럼 오지 않아서 긴장감 있게 즐길 거리가 별로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적들의 공격을 만만히 볼 수는 없다. 더 강하고 까다로운 적들이 등장하는 건 사실이고, 이들이 일종의 대오를 짜면서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을 때는 체력 소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적들의 공격 판정이 생각보다 넓어서 대미지를 받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특히 장거리 발사를 하는 적들은 꽤 귀찮은 존재인데 거리 계산을 잘못했다가는 기관총 세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이 ‘다크소울’이나 ‘인왕’을 떠올리게 하진 않는다. 아마도 개발진은 난이도에 타협을 보고, 게임의 흐름에 집중했던 것 같다. 난이도 선택을 다양하게 준비한 것도 그렇고, 난해한 퍼즐은 되도록 피한 흔적도 역력하다. 보통 메트로베니아 장르의 게임들은 미로처럼 엮여 있는 장소를 왔다갔다하면서 실마리를 찾게 설정하지만, 이 게임은 복잡한 계산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게임들을 끔찍이도 싫어했는지 스위치와 연결된 게이트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경우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서지’를 쓸모없는 스킬 정도로 언급했는데 그 밖에 마련된 스킬 사이에도 빈틈이 보인다. ‘데드셀’까지 즐겼던 메트로베니아 마니아라면 어떤 스킬이 불필요한지 금방 파악할 것이다. 무기에 필요한 화폐는 꾸준히 모을 수 있지만, 스킬에 필요한 화폐는 경제적으로 가치가 높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두 화폐 사이에 양극화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무기 교체가 그리 자주 있지 않은 것도 큰 원인이다. 사망 직전에 남는 화폐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게임은 꽤 손해 보는 일을 하는 것이다.

‘포어곤’은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메트로베니아 장르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평이한 난이도 덕분에 걱정했던 것보다 더 오래 즐길 수 있었고, 꽤 유익한 시간이었다. 스테이지가 생각보다 많았는데 전초 기지로 갈 수 있는 포털을 곳곳에 설치함으로써 스킬트리를 천천히 올리도록 설정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공격력과 속도를 올려주는 ‘오버드라이브’로 교체할 수 있었고, ‘서지’를 대체할 수 있었다. 게임이 그리 새로운 게 없이 평이한 수준이라서 혁신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나름 잘 짜인 스토리텔링과 ‘심판자’의 성우 목소리 연기력이 혼합되면서 도전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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