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센트, '묻지마'식의 양산형 모바일 게임

  • 입력 2021.02.26 17:53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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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게임’의 ‘크레센트’는 MMORPG(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중에서 ‘양산형 게임’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묻지마’식의 전개 방식으로 스토리와 게임성을 모두 버린 채 그저 업그레이드와 보상이 반복될 뿐이다. 게이머가 하는 일이라고는 터치를 하면서 자동 진행 시간을 더 앞당기는 것이다.

이 게임 덕분에 ‘게임성’이라는 정확한 의미를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다. 몰입할 수 있는 기능적 요소가 충분해야 하고, 게임 내 콘텐츠가 식상하지 않도록 폭이 넓어야 한다는 점. 반복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는 점도 게임성에 포함될 수 있다. 이 세가지 모두 게임에 녹아내려면 게이머가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건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출시되는 국내 모바일 게임들은 대부분 자동 진행 방식을 선택하면서 보상 시스템에만 몰두하고 있다. 마땅한 역할도 없이 보상만 강조하는 흐름은 ‘양산형 게임’이라는 꼬리표까지 생기고 말았다.

‘크레센트’는 그런 면에서 RPG라는 장르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한다. RPG는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이 영감이 되어 ‘던전 앤 드래곤’이라는 TRPG가 탄생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보드 게임처럼 오프라인에서 모여 사람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진행하는 올드한 방식이었지만, 그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게이머들과 아이들도 여전히 즐기고 있는 중이다. RPG는 이후에 ‘위저드리’나 ‘울티마’와 같이 CRPG, 턴제 방식이 도입된 SRPG 등으로 변형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게임의 장르를 딱 집어서 설명하기 힘든 시대가 됐다.

RPG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라면 뭐가 있을까? 바로 ‘성장’ 시스템, 그리고 ‘던전 앤 드래곤’에서 이미 핵심이 된 것처럼 ‘역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성장’ 시스템이 빠질 수 없는 이유는 게이머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더 색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성장’을 통해 능력치가 올라가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확인하고, 그 능력을 통해 강력한 몬스터를 물리친다. 점점 강해지는 주인공 캐릭터를 보면서 짜릿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크레센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국내 모바일 게임들은 RPG라는 장르를 달고 나오면서도 이런 기본적인 전제조차 무시하고 있다.

‘크레센트’에 관해서 딱히 강조할 부분은 없다. 처음에 기사, 전사, 궁수, 검사, 네 명 중에 한 명을 선택할 수 있고, 바로 게임이 시작되는데 도입부라고 할 수 있는 영상도 없고, 기본적인 배경 스토리 설명조차 없다. 쉽게 말해서 몬스터가 있으니 물리쳐 달라는 짤막한 안내 문구가 전부다. 그리고 그 밑에 ‘퀘스트 완성’이라는 버튼이 보이고, ‘10초 후 계속’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이 두 글자만이 정확히 녹색 글자로 표시되어 있는데 그만큼 앞으로 계속 보게 될 문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0초까지 기다리기 싫으면 바로 ‘퀘스트 완성’ 버튼을 누르면 게임이 진행되는데 이런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몬스터를 물리치거나 재료를 수집하는 퀘스트가 대부분인데 일사천리로 진행되다 보니 초반에는 많이 어리둥절하다. 처음에는 이 자동 진행 방식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당황스러웠는데 주인공 캐릭터 근방을 터치하면 가상 조이스틱이 보이고, 임의로 캐릭터를 이동시킬 수 있다. 그러다 캐릭터를 미션 영역으로 가져다 놓으면 자동으로 퀘스트를 완료하는 액션을 취한다. 몬스터들을 물리칠 때마다 스킬을 사용하는데 자동으로 진행되다 보니 주인공에게 무슨 스킬이 있는지 알 턱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공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장비와 스탯 등 게이머가 둘러볼 틈도 없이 게임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된다. 하물며 ‘현질’ 유도 광고나 이벤트 문구를 살펴볼 때도 게임은 계속해서 진행된다. 그야말로 ‘묻지마’식 전개, 어차피 모바일 게임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양산형 게임’ 성격이 어차피 다 이런 식이니 노골적으로 업그레이드와 보상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게임은 모든 퀘스트가 10초 안으로 자동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업그레이드와 보상 내용도 알기가 쉽지 않다. 캐릭터 스탯을 파악하는 와중에도 주인공은 계속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질’이나 이벤트 광고 문구를 볼 때도 흐릿한 실루엣의 주인공 캐릭터가 계속해서 전투를 벌이고 있으니 게임의 스토리나 게임성을 논할 이유가 없다.

RPG 장르에서 ‘성장’ 시스템은 새로운 탐험을 의미하기도 한다.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등은 모두 ‘성장’과 함께 강력한 몬스터를 물리쳐야 했으며, 자연스럽게 더 위험한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단순한 성장통 수준이었지만,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동기를 부여하면서 교묘히 그 패턴을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 패턴은 게이머들에게 강력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겉으로만 보면 관습에 따라서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감각을 제공한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중 명작으로 꼽히는 6편이 유행한 시절에 게이머들은 복잡한 미로에 들어가서 ‘파밍’을 즐기고 있었다. 본인 역시 그 반복되는 전투를 계속하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체력이 깎이고, 아이템이 줄어들 때마다 강력한 적을 만나기가 두렵고, 괜한 헛수고를 할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했지만, 그 위험을 주저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성장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전투가 더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레벨 노가다’라는 일본 언어를 섞어서 표현했는데 더 강력한 적을 만나면 또다시 같은 전투를 반복한 추억이 있다.

하지만 ‘크레센트’를 포함한 국내 모바일 게임들은 이런 중요한 ‘차이’를 생략해 버리면서 ‘양산형 게임’들을 지금도 계속해서 찍어내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계속 찍어낼 것이다.

RPG 장르의 내러티브는 게임의 공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서 성을 들어가는데 필요한 열쇠가 있다고 한다면, 훔치고 달아난 오크 패거리를 먼저 만나야 한다. 그럼 주인공 캐릭터가 출발하는 마을로 시작해서 오크 패거리가 있는 던전을 거쳐 성을 가야 한다. 단순히 열쇠만 가져온다면 좋겠지만, 오크들이 만만치 않다. 특히 오크 패거리의 우두머리 레벨이 장난 아니게 높다. 이제 주인공 캐릭터는 오크 우두머리와의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파밍’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는데 주인공 캐릭터의 성장을 상징하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캐릭터에게 단 한 방에 뻗어버릴 오크 패거리들, 그보다 더 손봐야 무릎을 꿇을 오크 패거리의 중간 보스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래야 게이머는 자신이 ‘성장’을 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크레센트’는 겉핥기 식으로 술술 넘어가다 보니 게이머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성장할 수 없으면 발도 디딜 수 없는 곳, 오크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거주하는 곳 같은 ‘공간적 제약’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유 게임’은 다른 개발진들처럼 범람하는 국내 모바일 게임의 트렌드를 그대로 따라갔다고 볼 수 있지만, 그 흔한 스토리 설명이나 세계관 이야기도 보이지 않아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시작부터 자동으로 퀘스트를 완료하고 진행하다 보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도 없어서 게임 시스템을 파악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개발진은 ‘한 손에 들어오는 당신만의 판타지 세상’이라는 카피 문구를 내세웠다. 그만큼 간단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게임은 보상이 반복될 때마다 광원 효과가 제법 튀는데 모바일이나 태블릿만의 깔끔한 해상도로 플레이하면 눈이 호강하는 면은 있다. ‘가챠’ 시스템이라는 것도 보이지 않아서 무과금 유저가 즐기는 시간도 충분해 보인다. 비주얼이 아기자기한 만큼 이후에 스토리를 추가하면서 동기 부여를 한다면 모바일 게임 유저들의 요구에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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