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가벼운 로그라이크', PC '던전 림버스' 리뷰

  • 입력 2021.03.04 15:13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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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가끔은 현실을 버티고 위로하는 소중한 역할을 한다. 게임판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게이머들이 아직도 '옛날' '고전'을 사랑하는 이유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서,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그때의 감성 같은 것을 다시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퐁' '테트리스' '갤러그' '스트리트 파이터' '울펜슈타인' '울티마' 등 장르의 시작점에 있는 게임을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땐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재미와 감동'이 담겨있다. 개인적으로는 게시판의 업로드 '짤방' 정도 용량으로도 그런 감동을 줄 수 있었다는 것에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2021년의 관점에서 보자면 허접해 보이고 재미라고는 단순한 반복밖에 없어 보이지만, '고전' 혹은 '클래식'에는 단순함과 간결함에서 나오는 저력이 느껴진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게임 개발사들도 새롭게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발전시키기보다는 예전의 것을 다시 꺼내어 다듬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새로움보다는 아무런 힘이 없을 것 같은 '추억'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이런 취향에 맞는 장르라고 한다면 당연 '로그라이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게임은 고전의 맛인 '도트'를 근본에 둔 로그라이크 '던전 림버스'다. 아마 작년 'BIC 2020'를 유심히 봤던 게이머라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장르 자체에 '클래식'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어색하긴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오래전 'M방'과 '피쳐폰'에서 하던 게임의 추억이 떠오른다. 

정통 로그라이크를 따르는 게임인 만큼 스토리의 비중은 작다. 주인공의 이름은 입력하지 않고, 언급되지도 않는다. 도입부터 고전적인 방법이다.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던전에서 기억을 잃은 상태이며, '더 깊은 곳으로 가자. 그분을 위해'라는 애매한 대사가 전부다. 시작의 배경은 얼핏 보기에도 마지막 스테이지처럼 보인다. 최종 보스가 있는 챕터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엔 따로 할 것도 없다. 몇 번 움직이다 보면 주변의 적들에 '순삭' 당한다. 플레이어는 이제 수십번의 파밍을 통해 다시 이 지역까지 와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별다른 의미 없이 첫 죽음을 겪으면 '대장장이'를 만나게 된다. '대장장이' 역시 별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마을을 찾아가 보라고 한다. 마을에서는 소녀와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녀도 그다지 친절하진 않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단서를 얻을 수 있는데, 주인공의 잃어버린 기억은 던전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 말해준다. 이야기의 흐름만 놓고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 같지만, 장르가 '로그라이크'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순 있다. '목적'이라도 있는 게 어딘가. 어쨌든 '그분을 위해' 그리고 주인공의 '잃어버린 기억을 위해' 플레이어는 끊임없는 파밍 노가다를 시작한다.

게임의 조작은 간단하다. 상하좌우로 타일 한 칸을 이동할 수 있고, 근처에 적이 있다면 공격이 이루어진다. 대각선 이동은 할 수 없다. 진행은 '일시 정지'를 기본으로 한다. 던전에 등장하는 몬스터가 무작위로 막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행동에 맞춰 똑같이 움직인다. 던전 안의 모든 것이 '턴'이라는 강력한 규칙으로 묶여있다. 로그라이크 게임을 해본 게이머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일 규칙이다.

 

그렇다고 몬스터가 무작정 쫓아오거나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한 건 아니다.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으면 도망가기도 하고, 타일 위에 고정한 채로 기다리다가 플레이어가 접근하는 타이밍에 맞춰 움직이는 몬스터도 있다. 플레이어가 제자리에서 턴을 넘기는 스킬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주변의 오브젝트를 사용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벽을 활용해 거리 조절을 해야 한다.

 

캐릭터 스펙은 간결하다. 기본에 충실했다. 'HP' 'MP' '경험치'는 플레이 화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얻게 되는 장비에는 '공격' '방어' '민첩'의 세 가지 스텟 옵션이 붙는다. 의외로 '배고픔'의 요소가 없다. 획득하는 소비형 아이템은 모두 체력과 마나를 회복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모든 스탯은 정직하게 수치가 고정되어 있다. '10~15만큼 체력을 회복합니다' '피해를 5~9 줍니다'가 아니다. 공격과 체력회복, 몬스터에게서 받는 피해의 수치가 명확하다. 이 게임의 변수라고 한다면 바로 크리티컬 대미지다. '크리티컬'은 '민첩' 스탯에 따라서 발동한다.

전투의 핵심은 적을 몇 대 때려야 하는지, 그 횟수를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적의 체력이 30이고, 플레이어의 공격력이 14라면 크리티컬이 뜨지 않는 이상 세 번을 공격해야 한다. 이럴 땐 플레이어의 공격력을 15에 맞춰 두 번의 공격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당연히 적의 체력보다 높은 공격력을 갖추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한 파밍이 필요하다. 공격 횟수를 줄이고, 빠르게 적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넉백이나 스턴 같은 디버프 효과도 받기 때문에 타일도 꼼꼼하게 계산해야 한다. 몬스터의 디버프는 '독' '마비' '벙어리' '기절'이 있다. 초반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중 후반부에서는 위협요소가 된다. 플레이어가 입장하는 구역과 몬스터에 따라 디버프가 제한되어 있어서 필요한 해제 아이템은 챙겨갈 필요가 있다. 

로그라이크인 만큼 '제한된 아이템' '죽으면 끝'을 착실하게 따르고는 있지만, 치밀하게 구성되진 않았다. 우선 모든 아이템은 인벤토리 한 칸을 차지한다. 체력과 마나를 모두 회복하는 아이템이나, 체력만 3 회복하는 아이템의 크기가 같다. 특정 아이템을 소지했을 때의 페널티도 없다. 무게로 인한 이동의 제한이나 어떤 디버프도 없고 '모든 아이템은 한 칸'이라는 간단한 규칙이 적용된다. 

 

한번 죽으면 모든 아이템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인벤토리에 소지했던 아이템 일부만 없어진다. 중간에 마을로 귀환한 후 재화를 저장하는 시스템은 없다. 단순히 '죽으면 몇개는 잃어버린다'는 시스템을 적용했다. 장비 아이템은 '공격' '방어' '민첩'의 스탯 중 하나를 택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지만, 사실 후반부로 가면 사용하는 조합이 정해져 있다. 명확하게 장비의 '등급'이 느껴지기 때문에, '아 뭘 선택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적다.

 

던전 출발 전에는 퀘스트를 선택할 수 있다. 이때 특정 NPC를 구출 퀘스트를 선택하고 완료하면, 마을에 각종 건물을 설치할 수 있다. '던전 림버스'의 특징 중 하나는 '카드'를 선택해서 건물의 버프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뽑는 '카드'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버프의 형태가 달라진다. 골드가 많다고 해서 동료를 막 영입하거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카드에서 뽑혀야' 각종 건물을 사용할 수 있다.

'던전 림버스'는 의도가 확실하게 느껴지는 게임이다. 도트 그래픽으로 찍어낸 때깔과 사운드에서 90년대 말의 도스 게임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게임 내적인 부분까지 다듬어지지 않은 '옛날'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아쉽다.

 

개인적으로 '로그라이크'는 치밀한 던전 레벨링이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의 시작부터 최종 보스를 물리치는 구간의 캐릭터 성장 폭이 일정해야 하고, 또 플레이어가 도전할만한 요소가 다양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던전 림버스'는 조금 손봐야 할 부분이 보인다.

 

플레이한 입장에서 성장의 느낌을 느끼기에는 그 호흡이 너무 짧다. 특히 특정 구역에서의 무한 레벨업과 파밍은 이 게임의 재미, '로그라이크'의 색깔을 완전히 없애버린다. 제한 없이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는 것과, 소환된 몬스터에서도 아이템 파밍이 되는 것은 꼭 수정해야 할 부분이다. 

 

보스전의 긴장감도 살짝 부족하다. 물리쳐야 할 보스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명확하게 어떤 패턴인지 와닿는 것은 없다. '뭐야 지금 공격하고 있는 건가? 패턴은 이게 끝인가?' 하는 식으로 '비비다 보면 깨지는' 형태의 보스가 종종 보인다. 맵의 오브젝트를 활용하면서 공격을 하거나 혹은 수비를 하는 식으로 전투를 다양하게 만들 거나, 가장 대표적인 '지 수 화 풍' 같은 속성을 아이템에 활용하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

국산 인디게임에서 고전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좋았다. 근성만 있다면 어렵지 않은 장르이기도 하고, 게임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걷어내 진행이 간결한 것도 좋았다. 하지만 그만큼 '로그라이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은 맛이나 도전 의식을 느끼긴 어려웠다. '파밍을 통한 성장'의 재미가 아니라 '아직 만나지 못한 NPC'가 궁금해서 플레이 한 게임이다. 그만큼 던전의 난이도와 성장속도, 밸런스에 영향을 주는 버그는 고쳐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투박하지만 담백한 고전의 때깔, 심플하고 가볍게 즐길만한 '로그라이크'를 찾는다면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직 고쳐야 할 부분들이 많이 남아 있다. 지금 당장 급하게 플레이하기보다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게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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