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4, 값비싼 킬링 타임… 모든 MMORPG의 업그레이드판

  • 입력 2020.11.30 13:53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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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8년 만에 새로운 넘버링을 달고 출시한 <미르4>는 국내 MMORPG(대규모 다중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장르의 모든 면을 업그레이드했다고 할 수 있다. <리니지>의 영향력 아래 여전히 사행성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캐릭터와 배경 디자인, 전투 시스템 등 모든 면에서 좋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PC 클라이언트로도 플레이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체계를 마련한 점이나 캐릭터의 커스터 마이징에서 느껴지는 수려함은 확실히 기존 온라인 게임과 격이 달라 보인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동기부여가 크지 않아서 기존 MMORPG 게임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 했다. 스토리는 단순 명료해 보이는데 업그레이드와 보상에 연연한 나머지 다소 느슨하게 전개된다. 모바일 게임의 경험이 전무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양화를 보는 듯한 세련된 배경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의 스토리텔링에는 좀처럼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 아마도 개발진은 기존 MMORPG 장르를 개척하기보다 서버와 시스템, 그래픽 등에 더 많은 투자를 함으로써 골수팬들을 끌어모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임은 전사, 술사, 도사, 무사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어느 캐릭터를 선택하든 스토리가 엇갈리는 일은 없다. 비천 성주 ‘손덕’에게 납치된 ‘천파’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대법사 ‘사르마티’와 그의 제자들이 나선다는 게 주된 스토리다. 이름이나 스토리 면면을 살펴봐도 무협지의 한 대목을 보는 듯한데 게임에서는 서양 문화에서나 볼 법한 몬스터들도 제법 등장한다.

<미르4>는 RPG 장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모든 시스템을 총 망라한 느낌이다. 처음 시작부터 등장한 정령은 게임의 안내원 역할을 하지만, 패시브(스킬을 장착하면 항상 효과가 유지됨) 스킬을 일부 작동한다. 수련을 통해서는 체질과 내공 등을 개선하는데 체질에 들어가면 물리 방어와 술법 방어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강화할 수 있다. 내공에 들어가면 무협지에서나 들어 볼 법한 여러 용어가 등장하는데 결국은 물리 공격과 방어 등을 업그레이드하는 영역이다. 전투 시스템에서 활용되는 스킬에서도 각종 물리 공격력을 자랑하는 비책들이 존재한다. 그 밖에 대장간, 제작 공방, 과제, 토벌 등 눈에 익은 메뉴들이 수두룩하다.

결론적으로 이 게임은 범람하는 온라인 모바일 게임들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다만 국내 배우들을 모델링하고, 성우들의 뛰어난 목소리 연기가 곁들여지면서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더 큰 대접을 받는 느낌이다. 포커를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자신감은 있지만 장소와 경쟁 선수들이 보잘것없다면 초라한 기분이 들 것이다. 당신이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패를 자신 있게 던지거나, ‘풀 하우스’처럼 예쁘장한 모양을 곁눈질로 보고 있다면 그 장소는 당연히 라스베이거스여야 한다. 비유를 하자면 <미르4>는 훌륭한 패를 마음껏 던질 수 있도록 과감하게 판을 깔아 놓았다. 번쩍번쩍한 광택이 나는 포커 카드와 정장을 빼입은 딜러가 능숙하게 카드를 나눠준다. 베팅과 콜, 또는 레이즈를 최대한 우아한 목소리로 부르고, 상대방의 블러핑을 간파할 정도로 심리전도 멋들어지게 발휘한다. 마치 <007 카지노 로얄>의 제임스 본드나 <퀸즈 갬빗>의 엘리자베스 허먼처럼 다소 과장된 연기를 섞어서 게임의 재미를 최대한 끌어올린다.

하지만 아쉽게도 <미르4>는 제임스 본드나 엘리자베스 허먼을 충족할 만한 상대나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게이머의 눈이 번뜩일 정도로 미려한 배경 그래픽과 전투 장면이 존재하지만, 결정적으로 동기를 부여하지 못 한다. 제임스 본드와 엘리자베스 허먼이 된 것 같지만, 테러 자금책은 없고, 세계 1위 소련 선수인 보르고프도 이 세상에 없다. 게임은 분명히 윤기가 흐르지만, 밋밋한 전개 탓에 매우 심심하고 질리는 면이 있다.

그 원인 중 하나라면 역시나 업그레이드와 보상의 남발이다. 리니지의 영향력인지 알 수는 없지만 천파 공주를 찾기 위해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몬스터들은 계속 등장하고, 전투는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게임을 하면서 느낀 점은 업그레이드와 보상을 늘 머릿속에 둔 탓인지 시나리오 중간중간에 핑곗거리를 넣으려고 몰두한 흔적이 뚜렷해 보인다. 게이머들에게는 그저 MMORPG의 일상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개연성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서 약재를 찾아야 한다는 제조사의 조언을 듣고 바로 코앞 언덕을 점프해서 재료를 찾아 버리거나, 재료가 버섯 몬스터(?)로 설정돼서 바로 전투에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기나긴 모험을 암시하는 대사들이 쏟아지는데 최종 목적지가 코앞인 경우도 있었다. 이 게임은 위기가 급박한 상황에서도 업그레이드와 보상은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몬스터들과의 전투는 꼭 지나쳐야 할 과정이다. 여기서 본인은 시나리오 중간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해서 적지 않게 당혹스러웠다.

당연하게도 이 게임 역시 모바일 MMORPG 장르에서 흔히 봤던 자동 시스템이 있다. 미션 목록이 우측 화면 상단에 표시되고 터치를 하면 자동으로 건너가서 전투를 하든 대화를 하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의아한 건 튜토리얼에서부터 강조했던 점프 기능도 자동 시스템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점이다. 분명히 위로 가볍게 스크롤을 하면 점프를 할 수 있다고 정령이 비중 있게 가르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모바일 게임에서는 이런 수고도 양보해야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이러한 자동 시스템은 여타 모바일 게임에서도 흔히 봐 왔던 모습이다. 미션 목록은 대부분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전투를 하는 경우인데 이 게임은 이벤트가 끝나고, 자초지종 설명도 없이 캐릭터가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다. 최소한 다른 게임들은 컷신이 끝나고, 말풍선이든 뭐든 어떤 매개를 통해서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알려줬지만, 이 게임은 모든 게 자동적이다. 이럴 거면 대화하기 위해 캐릭터를 콕 집을 이유도 없지 않을까? 어차피 미션 목록에서는 해당 캐릭터와 대화를 하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수고스럽게 터치를 두 번 할 필요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게임의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심할 필요가 없었다. 이 게임의 좌측 상단을 보면 볼륨을 설정할 수 있는 아이콘이 표시되어 있는데 유난히 눈에 들어와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상징성이 크다고 봤다. 이미 개발진도 게이머들이 볼륨을 음소거하고 즐긴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킬링 타임’ 게임을 찾는 유저들은 어차피 게임의 전개 방식을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귀는 심심해지고, 결국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는 것이다. 국내 성우진의 목소리 연기가 있지만, 풀 더빙이 아니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고 <미르4>가 단순한 MMORPG는 아니다. 중국의 양산형 게임이라는 인상도 있지만, 중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전작들 때문에 개발진이 특별히 신경쓴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한 덕분에 캐릭터들의 모델링은 특별히 빛이 나고, 배경 그래픽은 지금 생각해도 여타 모바일 게임들을 가뿐히 뛰어넘고 있다. 특히 캐릭터들이 스킬을 발동할 때마다 등장하는 광원 효과도 국내 게임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인 정신이다. 개인적으로는 업그레이드와 보상의 남발이 시나리오 전개를 오히려 방해하는 면이 있었지만, 모바일 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볍게 ‘킬링 타임’으로 즐겨도 무방했다.

<미르4>는 한류 게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다시 한 번 세계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개성은 보이지 않지만, 기존 모바일 게임을 즐겨 하는 게이머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한 MMORPG기 때문에 무난히 즐길 만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시나리오 부분과 게임 전개 형식만 더 역동적으로 개선한다면 이 게임이 표방한 것처럼 ‘K-판타지’를 달아도 무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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