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lconeer(더 팔코니어), 상쾌한 비행이거나 공허하거나

  • 입력 2020.11.13 12:03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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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mson Skies(크림슨 스카이)>와 <Panzer Dragon(팬저 드래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The Falconeer(더 팔코니어)>는 18년이라는 긴 시간을 공들여 제작한 1인 개발 게임이지만, 막연한 세계관과 공허한 플레이로 기나긴 탐험으로 연결되지는 못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글로 번역해 놓은 듯한 엉성한 한글 자막에다 띄어쓰기조차 되어 있지 않은 탓에 배경 설명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추후 업데이트로 자막이 수정될지는 모르겠지만, 개발에 매진했던 Tomas Sala(토마스 살라)가 설정한 이 세계관이 익숙해질 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게임은 수많은 질문과 해답을 내놓지만, 그리 친숙한 전개는 아니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을 집요하게 따라가기에는 미적지근한 구석이 있다. 가장 나쁜 점은 한글 자막 제작에 있어 너무 무성의 했다는 것이다.

게이머는 가족을 잃은 민간 무장대로 분해서 거대한 매에 탑승하고, ‘The Great Ursee’라는 세계를 지켜내야 한다. 우뚝 솟은 탑에 살고 있는 ‘여제’의 존재는 까마득한 판타지의 세계로 안내하며, 여기에는 경제적 가치가 충돌하고, 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나기도 한다. 뭔가 심오한 장면들이 시시각각 나타날 것 같지만, 게임의 대부분은 <팬저 드래곤> 형태로 전개된다. 속도전을 즐길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이 아니라 RPG 장르가 섞인 ‘비행 시뮬레이션’이라고 보면 된다. ‘오픈 월드’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맵 디자인이 다소 소소해서 탐구할 의욕이 생기지는 않는다.

한 가지, 이 게임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조작감이다. 토마스 살라가 가장 주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진동 기능이 아주 촘촘하게 설정되어 있어 게임 플레이 중에 여러 번 놀라기도 했다. 본인은 플레이스테이션4 패드로 플레이를 했는데 스팀의 확실한 지원 덕분에 꽤 매끄럽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게임 메뉴에서 설정과 조작을 컨트롤하는데도 진동이 와서 실소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만큼 토마스 살라가 진동 기능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타 비행 시뮬레이션과 조작 기능은 비슷하지만, 매를 조종하기 때문에 이동하는데 있어 특별한 재미가 있다. 날개를 펄럭이면서 하강을 하거나 몸을 한 바퀴 돌려 옆으로 회피하는 모습은 부드럽고 우아한 편이다. 미션 수행을 위해서는 보통 낮게 비행하지만,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번개가 치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동 중에도 그리 심심하지 않다. 특히 돌진 능력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적들과 대치 중에는 따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적들 역시 매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조준 기능을 통해 타깃을 설정할 수 있다. 전투는 <크림슨 스카이>처럼 ‘제2차 세계 대전’의 공중전을 보는 듯하다. 배경이 망망대해로 보이기 때문에 격렬한 전투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조준 기능이 따로 있어서 집요하게 추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반에는 게임이 꽤 상쾌하게 보인다. 게이머가 탄 매가 구름 사이를 비행하고, 바다 위에서 매섭게 활공할 때는 얼핏 장엄해 보이기도 한다. 바다에 떨어진 지뢰를 낚아 채서 목표물에 떨어뜨릴 때는 게이머 주변에 감싸고 있던 차가운 공기가 열기류라도 만난 듯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이 그럴 듯 해 보이는 비행 역학은 꽤 직관적이고 견고해 보인다. 개발자 토마스 살라는 비슷한 아트 스타일로 비행 시뮬레이션을 선보인 바 있다. ‘Little Chicken Game Company’라는 사이트에서 그의 팀원들과 함께 아기자기한 프로젝트를 개발했다. 그만큼 ‘비행 시뮬레이션’ 장르에 바친 헌사와 노력은 존경할 만하다. 그는 이미 스카이림 모드에도 손을 댄 적이 있어서 판타지 장르에도 꽤 깊게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

게임은 먼저 조작 튜토리얼부터 가볍게 시작한다. 돌진과 회피 기능부터 시작해서 기류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부분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에너지 충전을 위해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미묘해 보이기는 했지만, 이동 중이거나 전투 시에도 활용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전투 중에 전사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이것이 꽤 맹점으로 남는다. 세 번째 스테이지로 이동하는 중에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하게 되는데 이전 전투와는 달리 적군들이 무지막지하게 공격을 퍼붓는다. 나는 침착하게 타깃을 설정하고, 크게 원을 그린 다음, 심호흡을 하는 순간에 대미지는 당할 대로 당한 상태가 되어 버렸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바닷속으로 추락한 상태였다. 이런 과정이 갑작스럽게 반복되다 보니 깊은 좌절감마저 드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밸런스가 터무니없이 붕괴된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게다가 장점으로 뽑았던 조작감은 오로지 패드로만 플레이할 때 적용된다. 이 게임을 마우스와 키보드로 플레이하려고 마음먹었다면, 매우 짜증나는 일이 될 것이다. 본인도 시야를 훤히 보고 싶은 마음에 마우스로도 플레이해 봤지만,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적군을 향해 타깃을 설정하고 나면 매의 부리와 평행선을 그려야 하는데 마우스가 패드보다 예민한 편이기 때문에 플레이 자체가 어수선해졌다.

마우스로 하면 더 정확한 사격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어긋나자 게임은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튜토리얼에서 배운 것처럼 몸을 빙빙 돌려 춤을 추듯 회피를 하더라도 금방 한계가 오기 때문이다. 아이템을 픽업해서 이동할 경우에 공격을 당하기라도 하면 이동도 쉽지 않아서 회피가 꽤 어렵다. 다행히도 NPC가 지원을 해 주는 경우가 있지만, 반복적인 죽음을 막아내지는 못 했다.

무엇보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문제는 한글 자막이다. ‘The Great Ursee’라는 세계관을 설명할 때 ‘Ursee’를 ‘얼시’라고 번역해 놓은 데다가 띄어쓰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서 첫 인상부터 좋지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mancer’를 그대로 ‘맨서’로, ‘order’를 ‘오더’로 번역한 것도 대충 구글 번역 사이트로 ‘복붙’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토마스 살라는 분명히 이 세계관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고, 여러 서적을 섭렵했을 것이다. 18년 동안 그가 바친 노력과 열정이 이런 식으로 무너진다는 것이 안타깝다.

다만 이 게임의 도입부나 이후에 세계관의 설명을 잘 들어봐도 그다지 좋은 스토리텔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혹시나 해서 해외 웹진들의 평가를 들여다봤는데 <팬저 드래곤>식의 전투 시스템 외에는 깊게 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제’와 게이머를 돕는 NPC의 풀 성우 더빙은 인상적이지만, 그다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The Great Ursee’라는 세계와의 연관성도 모호하게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한글 자막에 대해서는 오히려 영어 자막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정도다.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아서 NPC의 대사 전달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글꼴 색도 신경 쓰지 않은 바람에 배경색과 겹치면서 자막이 읽혀지지 않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NPC는 전투 중에 급박한 대사를 여러 번 쏟아내기 때문에 사실상 심각한 오류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더 팔코니어>는 비교적 쉬운 조작감 덕분에 접근이 용이하고, RPG 장르가 섞인 만큼 할 일도 많다. 약속된 미션과는 상관없이 마을을 다니면서 조사를 할 수 있고, 기지를 확장할 수도 있다. 즐길 거리가 많은 것은 확실하지만, 막연한 세계관과 반복적인 플레이 때문에 꽤 공허한 게임이 될 수도 있다. 판타지 세계에 심취한 나머지 내러티브가 오히려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어서 토마스 살라의 이 놀라운 잠재력 앞에서 무심코 지나갈 수 있다.

업데이트를 통해 한글 자막이 제대로 수정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제대로 수정된다 하더라도 신뢰가 금방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세계관뿐만 아니라 여제와 NPC의 대사들이 워낙 모호해서 중심축은 이미 전투 시스템으로 기울어졌다. 차라리 밸런스 조절을 위해 더 노력하는 것이 이로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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