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나이트(EarthNight), 예쁜 아트 스타일에 로그라이크 보상까지

  • 입력 2020.10.05 14:18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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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나이트(EarthNight)의 시작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자메이카 교복을 입은 소녀와 덥수룩한 수염의 힙스터 스타일 캐릭터를 선택하고 나면 등 떠밀리듯이 게임 스테이지로 밀려난다. 드래건의 등을 타서 직진하다가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이는 곧 지구에 도달하기 위해 대기층을 횡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드래건 아포칼립스라는 세계관이 낯선 것처럼 힌트도 매우 모호하고, 감당할 수 없는 가속도 탓에 초반부터 좌절할 수 있다.

하지만 <마리오>와 <소닉> 시리즈가 떠오를 정도로 노골적인 칩튠 뮤직과 캐리커처 스타일의 익살스러운 일러스트가 이 낯선 분위기를 상쇄하고 있다. 1980년대 게이머들에게 보내는 이 러브레터는 <스펠렁키(Spelunky)> 시리즈처럼 ‘로그라이크(Roguelike)’ 장르의 인상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게이머 스스로 리듬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드래건 등 위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게 되지만, 실력에 따라 제법 높게 도약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보람과 기쁨은 짜릿한 편이다.

먼저 게이머는 자메이카 소녀 시드니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스탠리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두 사람은 약간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핵심은 시드니가 더블 점프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스탠리는 긴 점프를 할 수 있다. 각 스테이지의 플레이 타임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인데 마지막에는 다른 드래건 등 뒤에 타도록 절차적으로 움직인다.

전개는 모바일 게임에서 흔히 봤던 이른바 ‘오토 러너(auto-runner)’ 형식으로 진행된다. 시드니와 스탠리는 게이머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직 직진만 하는데 속도를 잠시 늦추는 것 외에 이 가속도를 막을 방법은 없다. 진짜 문제는 게임의 배경이 드래건이 날아다니는 광활한 우주지만, 시야가 좁아서 앞에서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개체가 화면 밖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식이라서 대미지를 입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건 꽤 짜증나고 실망스러울 수 있다. <마리오>나 <소닉> 시리즈처럼 반복되는 패턴도 아니라서 초기에 우여곡절을 여러 번 겪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개는 궁극적으로 이 게임의 강점이 되었다. 게이머는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비밀 스테이지에서 숨겨진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고, 지름길로 선회할 수도 있으며, 어쩔 때는 우주에서 보지 못한 진귀한 드래건을 만날 수도 있다.

이제 게이머는 ‘로그라이크’ 장르의 흐름대로 게임을 반복하면서 업그레이드에 집중하게 된다. 여전히 드래건 등을 타고 스카이다이빙을 하지만, 더 많은 수수께끼를 향한 갈망과 더 다양한 도약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스탠리만이 할 수 있는 공격 능력, 그 밖에 반사와 방어 능력 등 즐길 거리는 많다. 개인적으로는 더 높은 점프를 위해 노력했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는 없었다. 다른 드래건으로 옮겨 타기 전에 펼쳐지는 이 게임의 하이라이트는 일부 공격 타이밍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 전술도 필요하기 때문에 초기에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이 플랫폼(발판) 게임은 대체로 기분이 좋아진다.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아트 스타일이 눈을 꽤 즐겁게 해준다. 여기에 귓가를 흔드는 칩튠 뮤지션의 활약도 존재한다. 지난 2017년, PSX(PlayStaion eXperience) 행사에서 모습을 보인 어스나이트 제작진은 인터넷 태그 ‘Mattahan’을 소개한 바 있다. Paul Davey라고 불리는 그는 평소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화가였다. 제작진은 그의 미친 실력에 반했는지, 이 게임의 캐릭터인 스탠리를 그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마침 <Beard Wars>라는 애플리케이션에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를 창작했고, 그 영감은 그의 여동생으로 이어진다. 시드니 역시 폴의 여동생을 콘셉트로 사용한 것이다.

이 게임의 제작 기간은 무려 10년에 가깝다. 비록 오토 러너 스타일이지만, 로그라이크 장르를 일부 흡수하면서 패턴이 고정되지 않은 탓이다. 무작위로 나열된 아이템들과 수많은 상호작용도 방대한 계산이 필요했을 것이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기 때문에 처음에는 매우 가볍게 보이지만, 일정 간격으로 달려드는 잡몹들 위로 세밀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더블 점프를 할 수 있는 시드니가 유용했다. 그녀는 일부 잡몹들을 통해 더 높은 비상을 할 수 있으며 체크포인트 형식으로 더블 점프가 갱신되기 때문에 게이머가 제대로 집중만 해준다면 스테이지를 벗어날 만큼 높게 날아오를 수 있다. 아이템 수집이나 업그레이드와 무관하지만 그에 따른 낙하 역시 이 게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핵심은 드래건 머리에 도달한 다음부터다. 스테이지를 완료하려면 드래건의 머리를 찔러서 무너뜨려야 하는데 시간이 제한이 되어 있고, 실패하면 중요한 보상을 놓치게 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검을 휘두르는 스탠리가 상대적으로 일 처리를 빠르게 하지 못해 번번히 실패했다. 폴의 여동생에서 영감을 얻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시드니로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두 캐릭터를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파워 업’이 가능한 아이템의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블 점프 부츠와 방어구가 대표적인 아이템인데, 마치 마리오가 거인이 된 것처럼 플랫폼과 에너미 오브젝트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도 존재한다. 공중에서 직진이 가능한 시드니에게는 절대적인 능력이었다. 와중에 드래건의 알과 기타 재료를 수집하면서 이러한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면 단순해 보였던 ‘오토 러너’ 장르가 더 가치 있는 모험으로 탈바꿈된다. 반면 일부 화면을 픽셀화하는 물약은 신박한 시도지만, 개체들을 식별하기 어렵게 할 뿐이었다. 안 그래도 가속도 탓에 개체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는 방해물처럼 느껴질 것이다.

게이머가 개체 판단이 어렵다고 단정할 시기는 첫 번째 레벨에서 살아남은 다음부터다. 이때부터는 ‘오토 러너’ 장르에서 벗어나 날아오는 플랫폼을 회피하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 말 그대로 이것저것 게이머에게 던져 대는 느낌이라서 빠른 시기에 좌절이 올 수 있다. 더블 점프 부츠를 장착하더라도 일부 플랫폼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 보니 가능한 빠르게 드래곤 머리에 도달하는 전술을 선택하게 되고, 제작진이 10년에 가깝게 제작했던 아트 스타일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특히 마지막 스테이지는 시련에 가깝기 때문에 특정한 장르를 언급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아이템을 수집하고, 추가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로그라이크’ 장르의 보람을 느낄 수 있지만, 반복적인 플레이를 희석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이 게임의 아트 스타일은 여전히 예쁘고 귀엽지만, 살인적인 어려움으로 금방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토 러너’ 장르는 꾸준히 살아남을 것이다. 게이머는 넘쳐나는 전리품과 보물을 수집하는데 혈안이 되기 때문에 끊임없는 속도를 유지하면서 점프와 다이빙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드래건 아포칼립스는 얄팍한 농담으로 보이지만, 직접 수작업으로 완성한 아트 스타일은 순수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칩튠 뮤직은 마치 ‘게임보이’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복고풍을 자아내면서도 일부 오케스트라 트랙이 혼합되면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게임은 로그라이크 장르를 일부 흡수하면서 ‘오토 러너’ 장르를 새롭게 해석했지만, 때때로 반복적인 전개 때문에 완벽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눈을 즐겁게 해주는 페인팅 비주얼이 꾸준한 효과를 보여주기 때문에 도전적인 게이머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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