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압도하는 지루함, '문즈 오브 매드니스' 리뷰

  • 입력 2020.04.02 15:24
  • 수정 2020.04.07 12:46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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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설가 '러브크래프트'가 만들어낸 '크툴루 신화'는 공포, 호러, 미스테리를 주제로 한다면 꾸준히 등장하는 소재다. 손 대신 구부러진 발톱, 문어 머리에 잔뜩 달린 촉수, 기분 나쁜 비늘, 간혹 두개골을 드러낸 끔찍한 모습 등의 '절대적 존재'를 마주하는 나약한 인간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크툴루 신화'는 다양한 매체에서 다뤄진 만큼 친숙하기도 하지만,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한 가지 일반적인 호러, 공포와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인간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비친다는 것이다. '도저히 맞서지 못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는 것이 이 이야기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 그것도 어떤 범접할 수 없는 '우주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담은 이 장르는 '코스믹 호러'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절대적 존재라는 것이 거대한 문어 같은 몬스터일 수도 있고, 혹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다른 질서의 시공간, 혹은 끝없이 파고 들어가는 심해일 수도 있다. 어쨌든 핵심은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절대적 공포'를 주제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강하다. 이 존재에 맞서 싸우면 액션이 되고, 전략 시뮬레이션이 되고, FPS가 된다. 그러나 또 인간은 나약하기도 하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라면 도망치거나 생존, 혹은 탈출해야 한다. 이럴 때 호러, 공포의 장르가 된다.

 

이 무서운 촉수물은 자주 엮이고, 들러붙는 컨셉이 하나 있다. '코스믹 호러'라는 단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바로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특히나 '인류의 문명이 굉장히 발달한 것 같지만, 사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란 먼지만큼의 가치도 없다'를 주제로 하는 이야기라면 일단 촉수가 나올 것이라고 짐작해도 괜찮을 정도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주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는 인류.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라고 착각하며, 지구 외의 다른 행성을 다른 행성을 탐구하고 테라포밍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주 저 먼 어딘가의 다른 생명체가 보기에 지구인은 미개한 수준이다. 이제 그들의 참교육이 시작된다!' 너무나 익숙한 컨셉이다. 하지만 영화, 소설, 게임할 것 없이 꾸준히 이야기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코난 엑자일'을 개발한 '펀컴'의 신작 SF 공포 게임 '문즈 오브 매드니스'가 이 방법을 선택했다. 미지에 대한 도전과 공포가 공존하는 확실한 배경인 '우주', 그것도 '화성'을 선택했다. 이 컨셉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명작이 있는 만큼, 공포 게임을 시도하기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코스믹 호러'를 꺼내든 이유가 있을 것이고, '펀컴'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공포가 있을 것이다. 과연 그게 어떤 것일지 한 번 살펴보자. 

예상 가능한 스토리 전개

이 게임의 핵심 스토리는 앞서 언급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주 많이 다뤄진 내용인 만큼, 기본 진행에서는 신선하게 느낄 만한 것이 없다. 고전적인 방식인 '사고로 인한 재앙'을 다루는 방식은 지루할 뿐이다. 우주와 관련된 이런 소재들이 영화 '그라비티'나 '인터스텔라' 처럼 그럴듯한 SF로 바뀐 탓도 있을 것이다.

 

영화 '에일리언'이나 드라마 '클로버필드 패러독스' 같은 느낌은 확실한 승부수가 있지 않은 이상 어지간한 게이머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한정된 공간과 자원, 그리고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사건들. 이런 사소한 일들이 결국에는 재앙을 이끌어 오는 씨앗이 된다'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지겨운 내용이다.

아쉽게도 '문즈 오브 매드니스'는 이런 전개를 선택했다. 인류의 두 번째 거주 행성으로 자주 거론되는 '화성'이 이번에도 등장한다. 화성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의문의 신호가 수신되고, 이를 연구하는 '오로치'라는 기관은 이 신호를 통해 인류와 또 다른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연히 '오로치'는 이 사실을 대중에 알리지 않은 채 은폐하기로 한다. 대신 비밀리에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첨단 연구 기지 알파 탐사선을 비밀리에 건설하기 시작한다. 플레이어는 '셰인 뉴하트'라는 이름의 기술자로 파견된다.

플레이어는 언젠가부터 악몽을 꾸게 되고,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역시나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기지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로치'가 숨겨온 진실에 점점 가까워진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너무도 많이 다뤄졌기 때문에 신선한 느낌은 없다. 전반적인 도입부 스토리를 이렇게 짰다면, 게임 내적인 부분에서는 확실한 승부수가 있어야 한다. 아쉽지만 '문즈 오브 매드니스'의 내용이나 구성만으로는 게이머들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숲' 보다는 '나무'에 집중한 디테일

'문즈 오브 매드니스'가 선택한 것은 '디테일'이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화성'과 '탐사 기지'를 최대한 사실처럼 그려내기 위해 많이 노력한 것이 느껴진다. 물론 우주 생활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 워낙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익숙함은 느껴진다.

 

하지만 '디테일'이라는 것은 한 끗 차이다. '문즈 오브 매드니스'는 이 차이를 살리고자 했다. 게임에서 등장하는 기본 구조물이나 다양한 오브젝트들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물론 현실에 '화성 탐사기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그럴싸하게, 정말 있을 법하게 그려냈다.

손목의 바이오 패드, 출입 ID카드, 연구실의 소품, 우주복과 탐사선 등은 일반적인 SF 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들이다. 게이머들 역시 정말로 독특하게 그려내지 않는 이상에는 큰 감흥이 없을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보완하고자 공을 들인 것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오브젝트'다. 

 

'문즈 오브 매드니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이템이나 오브젝트는 일회성에서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다음 진행을 위해서 꼭 챙겨야 하는 것들도 있다. 동료의 연구일지나 컴퓨터의 메시지들, 혹은 아무런 의미는 안내문이나 계약서와 같은 부분에서 '디테일'에 얼마나 집중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게이머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단서들을 발견하고 수집하는 재미를 느낄 수는 있다. 다만, '굳이 이렇게 꾸역꾸역 넣었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가상의 화성 탐사기지 생활을 잠깐이나마 경험해 볼 순 있지만, 크게 재밌지는 않다.

 

다행인 것은 텍스트가 많음에도 한글화 번역이 잘 되어있다는 점. 게임의 흐름을 천천히 이해하기 좋아하는 게이머들이라면 좋아할 방식이다. 다만 이 모든 과정이 모두 익숙한 방향,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이뤄진다는 것이 문제다.

공포를 압도하는 지루함

사실 개인적으로 공포 게임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는 편이다. '단서 쪼가리 몇 개 줍고, 퍼즐 뺑뺑이 돌다가 깜놀 몇 번 치고 끝' 솔직히 이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깜놀'에 집중하는 몇몇 게임의 그 불쾌함이 싫고, 잘 유지되는 긴장감마저 흩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뿜어내는 분위기를 느꼈던 적도 없다. 

'문즈 오브 매드니스'의 단점은 '공포감'을 느끼기보다는 익숙한 상황과 퍼즐로 인해 지루함이 계속 쌓인다는 점이다. 또한, 캐릭터의 이동속도가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것도 이 지루함에 한몫을 한다. 게임에서의 기본 이동속도가 느리게 설정되어 있고, 달리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일반적인 게임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일지를 훔쳐보고, 탐사 기지를 살펴보는 것도 잠깐일 뿐이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과학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세계는 그럴듯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물건들 역시 실제로 존재하는 물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친다. '깜놀'도 한두 번이지 나중에는 익숙해지기까지 한다.

게임은 후반부로 갈수록 '뜬금포'와 '억지 설정'이 느껴지고, 어지간한 게임과 영화에서 사용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중간중간 '깜놀'요소와 '전투'가 있긴 하지만, 이런 장치만으로는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엔 역부족이다. '그저 그런 공포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공포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괴기한 설정을 그대로 끌고 갔거나, 그게 아니었다면 확실한 액션 요소나 추격전이라도 넣는 편이 좋았을 것 같다. '문즈 오브 매드니스'만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솔직히 부족하다.

게이머들은 '용두사미'라는 단어만 들어도 어떤 느낌일지 알 것이다. 이 게임이 그렇다. 초반의 도입부, 그래픽, '상호작용' 에서는 다른 게임과 비교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공을 들였지만, 전반적인 게임의 아이덴티티 그러니까 '문즈 오브 매드니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분위기는 살리지 못했다. 초반에만 힘을 주고, 뒷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수습하는 느낌이 든다.

 

이후 발표될 게임들을 위한 첫 시도였다면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겠지만, 독립된 타이틀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차라리 VR 플랫폼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임의 전체 플레이타임도 길지 않았고, 'VR' 이라면 공을 들여 준비한 '디테일'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즈 오브 매드니스'는 콕 집을 순 없지만, 어딘가에서 본듯한 느낌이 들고, 예상 가능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만의 특징을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다. 전반적인 볼륨, 스토리의 흐름과 결말, 기괴한 분위기와 긴장감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게임이다. 이어지는 후속작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 이야기에서는 지금의 디테일보다,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 게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색깔'을 갖추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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