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티 레이크의 신작 방탈출 게임, 모바일 The White Door 리뷰

  • 입력 2020.02.14 11:55
  • 수정 2020.02.24 16:03
  • 기자명 김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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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즐기다가, 혹은 만화나 판타지 소설을 읽다가 이건 정말 나 혼자 알고 있기 아깝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일상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감동을 만화에서 느꼈을 때, 혹은 평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철학, 생각을 판타지 소설을 통해서 배울 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재미를 느끼기 위해 접한 콘텐츠지만 이 때만큼은 만화와 게임, 판타지 소설이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인간적 성숙을 유발하는 좋은 인생스승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슬램덩크나 드래곤라자, 바이오쇼크 시리즈 등을 즐길 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인간의 존재의미, 혹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 색다른 경험과 감정을 선사하는 콘텐츠들은 흔히 명작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간혹, 소비자에게 생소한 감정을 선사하지만 명작취급은 못 받는 것들이 있다. 이런 콘텐츠를 우리는 보통 기괴하다고 표현한다. 너무나 독특해서 모두에게 사랑받기 힘든 것들. 이번에 플레이한 The White Door(이하 화이트도어)가 딱 그런 게임이었다.

개발사인 러스티 레이크는 방탈출 게임의 명가로 불리는 개발사다. 큐브 이스케이프와 러스티 레이크라는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러스티 레이크의 신작, 화이트 도어. 시리즈의 스핀오프격인 작품이지만 시리즈 입문작으로도 무난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과연 어떤 특이점들이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상징과 추상으로 점철된 스토리. 그래도 이해는 간다

먼저 시작하기 전에 필자는 러스티 레이크의 수 많은 게임 중 일부를 맛만 본 정도라는 점을 고백하고 싶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나 인물간의 관계도에는 무지한 편이지만, 러스티 레이크의 게임이 어떠하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화이트도어를 플레이했다. 이전 러스티 레이크의 게임에서도 느낀것이지만, 이 개발사의 게임들은 하나같이 상징과 추상으로 얼룩져 있다. 주인공들의 대사 하나하나에도 뭔가 의미가 담겨 있을 것만 같고, 벽에 쓰인 낙서도 의미 없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그리고 이 스토리 탓에 러스티 레이크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대부분이 20대를 넘은 성인들이 대다수다.

화이트도어는 Bob이라는 주인공이 화이트도어라는 정신병원(?)에서 겪는 7일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임이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부여된 방에서 일정표를 따라 생활하게 되고, 일정표에 따라 잠이 들고 나면 게이머는 주인공의 꿈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알아가게 된다. 구조 자체는 단순하고 다음에 할 일도 명확한 편이지만 러스티 레이크 게임답게 모든 이야기 군데 군데 온갖 상징과 추상들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이게 또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라는 설정 덕택에 묘하게 잘 어울려서 어색하지 않다. 핵심인물 중 하나인 LauraBob의 전 여자친구로 등장하는데, 그녀와 Bob 모두 러스티 레이크 게임의 시리즈인 큐브 이스케이프 시리즈의 등장인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몰라도 게임을 즐기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의미없는 낙서는 없다. 정신 바짝 차리자

작 중 Bob은 조그마한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스템은 전형적인 방탈출 게임의 포맷을 그대로 따라간다. 초반에는 일정표대로 활동하다가 기억력 검사 부분과 여가활동 부분에서 퍼즐이 많이 등장하고, 중반을 넘어가면 모든 일상이 퍼즐로 점철되어 버린다.

방탈출 게임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건 퍼즐의 난이도인데, 화이트도어는 그 적정선을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 원체 퍼즐에 약한 필자는 중간에 몇 번이나 진행이 막혀서 공략을 찾아가며 엔딩을 봐야 했지만, 방탈출을 즐겨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은 조금만 고민하면 답이 나올 수 있을 정도다. 한 가지 팁이라면 중간 중간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어지간하면 기억해 놓으라는 것이다. 러스티 레이크 게임이 그렇지만, 이 게임에서 의미 없이 놓여진 물건은 한 개도 없다. 서랍 속에 신분증이 있으면 누군가가 이름을 반드시 물어보고, 액자에 의미모를 문양이 새겨져 있으면 나중에 퍼즐을 푸는데 문양이 꼭 필요하다. 진행이 막히면 풀이를 멈추고 힌트를 보고와도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 어디에 무엇이 있었다. 정도만 기억해 두면 한결 플레이하기가 편하다.

허술하면서 심플한 그래픽, 마법을 부리는 BGM

솔직히 그래픽은 좋은 편이 아니다. 애초에 인디게임에서 출발한 러스티 레이크인 만큼, 시리즈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심플하고 여유 넘치는 그래픽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그래픽이 거슬리지는 않는다. 정말 선 몇 개와 도형 몇 개로 구현해 낸 간단한 그래픽이고 인물의 묘사도 초등학생이 그린 것처럼 유치하고 부정확하다. 일례로 작중 미녀라는 묘사가 많은 Laura지만 필자는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렸고, 미녀라는 수식어가 나왔을 때는 실소를 금치 못 했다.

2020년에 나온 게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허술한 그래픽이고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다 한 톤으로 묘사되는 색감이지만, 필자는 이 부분이 한 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방탈출이라는 장르의 특징과 정신병원이라는 설정, 그리고 시종일관 줄을 타는 듯한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BGM까지. 3박자가 맞아떨어져 그래픽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BGM 역시 그래픽과 비슷한 느낌이다. BGM은 음침하고 삭막한 방 안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듯한 조용하고 쓸쓸한 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건 리뷰를 위해 음악에 신경 쓰면서 알게 된 건데 음악이 없는 부분에서도 필자는 음악이 흘러나왔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런 음악이 없는 부분조차 BGM의 한 부분으로 착각하게 하는 기묘한 마법을 선사했을 정도로 BGM은 훌륭했다.

전반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게임이 진행되어서 그런지 한 번씩 나오는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굉장히 달달했다. 명료하다고 할까? 조용한 BGM 속에서 적막을 깨는 목소리들이 귀에 쏙쏙 박혀들었다. 단순히 이름을 부르고, 영알못인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영어였지만, 적막한 BGM과 어우러져 단어 하나하나가 주는 울림이 크게 다가왔다.

독특한 진행방식과 부드러운 조작감

처음 화이트도어를 접하고 신선하다고 느꼈던 건 조작감과 독특한 시스템이었다. 보통의 게임들은 시작화면에서 Start라는 메뉴를 눌러야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가게 마련이지만, 화이트도어는 시작화면이 제목 그대로 하얀 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태다. 여기서 문을 누르면 열리면서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화이트도어의 모든 진행방식이 이런 식이다. 대개의 게임들은 컷신과 플레이 부분이 미세하게라도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화이트도어는 그 경계가 굉장히 모호하다. 특히 Bob의 꿈에서 이런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는데, Bob의 설명에 따라 조작을 해야 하는 식이다. Bob이 그녀가 눈을 감았다고 하면 게이머가 그녀의 눈을 감겨줘야 하고, Bob이 칵테일을 받았다고 하면 플레이어가 Bob의 손을 칵테일 쪽으로 옮겨줘야 하는 식이다. 대부분이 간단한 조작으로 이뤄져 있지만, 이런 조작들이 플레이어를 스토리에 더욱 깊이 몰입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Bob의 움직임 역시 꽤 부드러운 편이다. 회상씬이나 스토리에서 나오는 조작 같은 경우는 뚝뚝 끊기는 느낌이지만 방 안에서 Bob의 움직임은 부드럽게 이어진다. 중반 이후 등장하는 그림자들 역시 조작하는 맛이 있다고 할 정도로 부드럽게 움직인다.

엔딩까지 길어야 3시간? 볼륨이 아쉽다.

화이트도어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게임이다. 엔딩을 보고나서 보다 명확한 스토리 이해를 위해 정보를 찾아보고 알게 된 것인데, 게임 내에 등장하는 모든 음식에는 다 주인공의 심경의 변화, 마음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이 숨겨져 있다. 어떤 어떤 일이 일어났다. 정도는 게이머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행동이 품은 의미, 그 안에서 느꼈을 Bob의 감정 등은 쉽게 캐치하기 어렵다. 스토리 측면에서는 이렇듯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지만, 게임 자체는 재미있다. 방탈출과 퍼즐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수작 수준은 되는 셈. 하지만 러스티 레이크의 다른 게임들처럼 볼륨이 크지 않다는 건 단점으로 꼽힌다. 7일의 스토리를 마치고, 에피소드까지 클리어 하고 나면 플레이스테이션의 트로피 수집처럼 숨겨진 요소인 별을 수집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그럼에도 퍼즐과 게임은 재미있기에 러스티 레이크의 게임을 좋아하거나 방탈출 게임을 즐기는 이라면 가볍게 플레이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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